[책속의 이 한줄]말·세·바의 힘… 신나는 말은 여럿이 할수록 좋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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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에게 모어(母語)란 호흡이고, 생각이고, 문신이라 갑자기 그걸 ‘안 하고 싶어졌다’고 해서 쉽게 지우거나 그만둘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제37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침묵의 미래(김애란·문학사상·2013) 》

‘침묵의 미래’는 지난해 이상문학상 대상을 받은 단편소설이다. 이 소설의 화자인 ‘나’는 특이하게도 사람이 아니라 말(言)이다. 구체적으로 지금 막 지구상에서 소멸된 언어의 영혼이다.

소설의 배경은 가상의 강대국이 멸종위기에 처한 언어의 ‘마지막 화자’들을 한데 모아 전시한 ‘소수언어박물관’. ‘나’는 ‘나’를 마지막으로 사용한 노인을 비롯해 마지막 화자들이 전시되다 숨을 거두기까지의 생을 증언한다.

소설 속 ‘나’가 자신을 소개하는 대목은 언어의 본질을 생생하게 드러낸다. “나는 구름처럼 가볍고 바람처럼 분방해 시시각각 어디론가 이동한다. 그러다 나와 비슷한 것과 쉽게 결합한다. …나는 거의 모든 것인 동시에 아무것도 아닌 노래다.”

또 “말을 향한, 지독한 향수병”을 앓고 있는 마지막 화자들의 모습은 언어가 개인의 정체성과 공동체의 문화, 역사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지 보여준다. “이들은 과거에 들었으면 절대 흔들리지 않았을 몇몇 밋밋하고 단순한 단어 앞에서 휘청거렸다. 그래서 누군가는 자기네 말로 무심코 ‘천도복숭아’라고 말하며 울고, 어떤 이는 ‘종려나무’라고 한 뒤에 가슴이 미어지는 것을 느꼈다.”

소설 속 소수언어박물관은 멸종위기 언어를 보존하고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세워졌지만 결국 찾는 사람도 없이, 소멸된 언어를 연료로 사용하는 공간이 되고 만다. 이 소설은 ‘나’의 목소리를 빌려 소멸되는 언어의 문제를 비롯해 문화제국주의의 폭력을 얘기한다.

욕설 막말 비속어로 우리말을 파괴하는 것도 언어를 소멸시키는 행위다. 올해는 소설의 문구처럼 “혼자 하는 말이 아닌 둘이 하는 말, 셋이 하면 더 좋고, 다섯이 하면 훨씬 신날 말”이 많이 들리길 바란다.

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
#제37회 이상문학상 작품집#침묵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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