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시민의 기부는 기업의 기부보다 강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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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여하지 않고도 기부할 수 있는 모금 방식을 ‘참여의 정크푸드’라고 부른다. 포만감은 느껴지지만 장기간에 걸쳐 강한 공동체를 구축하는 데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불량식품이라는 뜻이다.” 》

―‘왜 기업은 세상을 구할 수 없는가’(마이클 에드워즈·다시봄·2013년)

오늘날, 개인의 생활 기록들이 인터넷 공간에 넘치도록 많아도 역사는 여전히 승자 중심, 영웅 중심으로 돌아가는 듯하다.

경제의 세계에서도 이런 서술법은 엄연하다. 이 책은 환경 보호나 빈민 구호 등을 펼치는 박애단체들에 부자들의 기부가 과연 그토록 절대적인지부터 따진다. 저자는 “박애단체들의 활동 자금은 거대 재단의 기부금이나 부자들의 은총과는 거의 무관하고 대부분 개인과 작은 공동체로부터 나온다”고 말한다. 미국의 경우 빌 게이츠가 평생 기부할 금액의 세 배가 넘는 액수가 매년 평범한 시민들로부터 시민사회 단체들에 기부되고 있다는 것이다.

남미 도시빈민의 주거문제에 관한 논문으로 학위를 받은 저자는 가난과 불평등, 폭력, 박해, 차별을 없애는 데 기업의 기부는 그다지 효율적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문제 해결을 저해한다고 본다. 기업들이 단기적 문제(가령 에이즈 치료약의 공급)에만 너무 집중하는 바람에 장기적이고 효과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방법(가령 국가가 갖춰야 할 보건시스템)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이런 박애자본주의의 영향력이 확대되다 보면 박애단체 등 비영리부문이 기업과 같은 영리 조직의 통제 아래 놓여버릴 것임을 우려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박애자본주의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라 할 수 있는 후원자의 통제력 확대는 곧 시민사회그룹의 자율성과 유연성 축소를 의미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효율과 성과 중심의 기업사회, 그리고 연대와 공조 중심의 시민사회, 이 상이한 현대 인간생태계의 두 구성원리가 지금 ‘박애자본주의’라는 지점에서 소리 없는 혈투를 벌이고 있다.

박유안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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