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길 명품 길]<12>신달자 시인의 서울 종로구 문학둘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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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6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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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윤동주 시인도 이 나무 아래서…

서울 종로구 청운동 ‘시인의 언덕’에 오른 신달자 시인이 윤동주 시인의 삶과 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서울 종로구 청운동 ‘시인의 언덕’에 오른 신달자 시인이 윤동주 시인의 삶과 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비가 억수같이 퍼부었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갰다. 빗물을 머금은 흙냄새가 발아래에서 솔솔 피어올랐다. 언덕으로 오르는 계단은 뽕나무에서 떨어진 오디가 곳곳을 검붉게 물들였다. 언덕 위에 오르자 북악산과 인왕산 사이로 서울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나지막한 탄성을 내뱉으며 성곽 옆에 우뚝 솟은 소나무에 다가섰다.

“어쩌면 윤동주 시인 역시 살아생전 140년도 더 된 이 소나무 아래 서서 암담했던 서울 시내를 내려다봤을지 몰라요.”

12일 오후 함께 서울 종로구 청운동 ‘시인의 언덕’을 오른 신달자 시인(69·여)이 이렇게 말했다. 서슬 퍼런 일제강점기 시절 시집 한 권 남기고 스물일곱의 나이로 운명한 시인 윤동주(1917∼1945). 독립운동 혐의로 일제에 의해 사상범으로 몰린 그는 광복을 불과 6개월 앞둔 1945년 2월 16일 오전 3시 36분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생체실험 대상이 돼 성분 불명의 주사를 맞고 운명했다. 그가 남긴 ‘서시’는 아직까지 대한민국 국민이 사랑하는 시 중 한 편이다. 이 시인의 언덕은 윤동주를 기리기 위해 만든 곳이다. 신달자 시인 역시 시집 한 권으로 이렇게 널리 사랑받는 윤동주를 마음속 깊이 아끼고 있다.

“윤동주 시인이 쓴 ‘서시’는 아마 여대생이라면 한 번쯤은 러브레터에 꼭 쓰지 않았나 싶어요. 너무나 사랑스러운 시인이죠.”

신달자 시인은 일제강점기 시절에도 우리말로 주옥같은 시를 써온 윤동주의 열정을 기억해야 한다고 했다. 그녀는 “나 역시 50년 가까이 시를 써올 수 있었던 건 바로 시에 대한 열정”이라며 “내년 봄쯤에는 그동안 써왔던 시를 묶어 시집을 한 권 낼 것”이라고 말했다.

수십 년간 시를 써왔지만 아직도 자신의 문학이 아쉽기만 하다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성곽을 따라 언덕을 내려왔다. 언덕 아래에는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작은 정자가 하나 있다. 이곳 역시 윤동주 시의 이름을 딴 ‘서시정’이다. 신달자 시인은 “그가 쓴 시 ‘자화상’을 읽다 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자화상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든다”며 “그가 시를 통해 희망을 남긴 것처럼 나도 여러 사람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시를 쓰고 싶다”고 말했다.

인왕산의 출발점이자 북악산의 끝자락에 위치한 창의문에서 이어지는 성곽을 따라 걷다 보면 윤동주 시인의 언덕을 지나 청운공원에 이르게 된다. 남녀노소 쉽게 오를 수 있는 완만한 언덕길 울타리에는 윤동주의 대표 시들이 적혀 있어 눈길을 끈다. 종로구는 청운동 3-100 일대 버려진 물탱크와 수돗물을 만드는 데 썼던 가압장을 리모델링해 윤동주 문학관을 조성 중이다. 7월 4일 개관을 앞둔 이곳에서는 윤동주의 대표작들을 비롯해 그의 원고, 사진 등을 볼 수 있다. 김영종 종로구청장은 “문학과 조국을 사랑하는 그의 마음을 널리 기리고 이 일대에 이어진 문학둘레길을 문화관광지로 만들어 가겠다”고 말했다.

윤동주 시인의 언덕에서 내려와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까지 이어진 자하문로를 따라 걷다 보면 이상 시인의 옛집과 마주할 수 있다. 이상 시인이 세 살 때부터 20년 가까이 살았던 종로구 통인동 154-10의 옛집은 이상이 운영했던 ‘제비다방’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다방과 작업실, 공연장으로 꾸밀 계획이다. 현재 이곳은 문화예술 전시관으로 조성돼 비정기적으로 전시가 열리고 있다.

강경석 기자 coolup@donga.com
#신달자#문학둘레길#시인의 언덕#윤동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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