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이 사람이 사는법]‘… 무작정 유럽 축구기행’ 연재 우승호 조영래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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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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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그만둘 때 울컥했지만… 저질러야 한다는 생각 더 커져”

FC 바르셀로나 트레이닝복을 입은 우승호 씨(왼쪽)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트레이닝복을 입은 조영래 씨. 잘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내고 무모하다면 무모한 여행을 다녀왔지만 후회는 전혀 없단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FC 바르셀로나 트레이닝복을 입은 우승호 씨(왼쪽)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트레이닝복을 입은 조영래 씨. 잘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내고 무모하다면 무모한 여행을 다녀왔지만 후회는 전혀 없단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무모한 면이 없지 않았습니다. 서른을 훌쩍 넘긴 남자 둘이 직장도 버리고 축구 보러 유럽을 가다니요. 그것도 장장 75일간이나 말이지요. 동아일보 주말섹션 O₂에 10월 1일자부터 12월 3일자까지 5회에 걸쳐 ‘두 청춘의 무작정 유럽 축구기행’을 연재한 우승호 조영래 씨(이상 31세)가 1일 귀국했습니다. 여전히 허공에 붕 떠있는 것 같다는 두 ‘청춘’을 만났습니다.

청춘이라고는 했지만 적지 않은 나이다.

조영래=
막상 가보니 축구 보러 온 한국인 중에 거의 최고령자였다.

우승호=어떤 무리에 섞여도 ‘아저씨’로 통했다. 그 나이에 직장까지 내던졌다.

우=여태껏 살면서 한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집과 직장만 왔다 갔다 했다. 벗어나고 싶었다. 마흔이 되어서 ‘아, 10년 전에 갔다올걸’ 하는 후회를 하기 싫었다.

조=축구기행 자체가 직장을 다니면서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계획은 언제 세웠나.

조=5월 말, 맨체스터 유나티이드와 FC 바르셀로나의 유럽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보면서였다. 경기가 끝난 새벽녘에 우울해졌다. 진짜 가고 싶어졌다. 박지성이 맨유에서 뛸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 때문에 더 서두른 감도 있다.

우=올해 상반기부터 서로 직장 일이 힘들다고 진지하게 얘기하곤 했다.

직장에 사표를 낼 때 어땠나.

우=울컥했다. 막연한 두려움도 생겼다. 갔다 오면 또 직장을 구해야 하는데 이력서도 내고 면접도 봐야 하고, 옮긴다고 더 좋은 데 간다는 보장도 없고….(우 씨는 유명 햄버거체인의 점포 매니저 일을 3년간 했다.)

조=사표 내고 바로 여행계획 짜느라 일의 연장이라고 생각했다. 돌아와서 ‘지금 회사원들은 뭐하고 있으려나’ 하는 생각을 할 때 내가 백수라는 게 확 실감났다.(조 씨는 대형 광고대행사 AE로 5년을 일했다.)

75일간 생활은 어땠나.

조=“어째 평온한 날이 하루도 없냐” 하고 서로 말했다. 큰일은 아니었지만 매일의 미션이 생겼다. 숙소를 잡는 게 가장 힘들었다.

우=렌트한 차에서 사흘 정도 잤다. 생전 처음 보는 길에서 운전하는 것도 긴장되는 일이었다. 내비게이션이 종종 먹통이 돼 애를 먹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우=첫 경기다. 바르셀로나 홈경기장인 캄푸누에 들어설 때, 눈앞에 펼쳐지는 녹색 그라운드가 인상적이었다. ‘정말 우리가 유럽에 축구를 보러 왔구나’ 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시설이 좋지 않아 놀랐다.

조=맨유 연습장에서 박지성 선수를 만난 것. 처음 봤을 때는 어리벙벙했다. 박 선수가 차창을 내리고 “안녕하세요” 하는데 약간 건방진 듯도 했지만 거부감은 들지 않았다. 포스(force·힘)가 느껴졌다.

충격적인 순간은….

조=맨유 홈경기장인 올드트래퍼드에 갔을 때 봤던 야외의 남성 소변기였다. 우리도, 중국인 관광객들도 너무 신기해서 사진을 막 찍었다.

▶O₂ 11월 12일자 B6면 <4> 맨유-선덜랜드전서 뜻밖에 본 ‘Ji의 대결’

우=그런데 소변 보던 애들이 우릴 보고 씩 웃더라. 그 손으로 감자튀김도 집어 먹는 걸 봤다. 걔네들 절대 신사 아니다.(웃음)

가길 잘했다 싶었을 때는….

조=역시 축구를 볼 때였다. 경기가 재미없어도 축구장의 분위기 자체를 느끼는 것만으로 흥분됐다.

우=여러 나라의 경기장을 찾아가면서 차창 밖 엄청난 광경을 볼 때였다. 해질 녘 들판 너머로 노을이 깔리고 정말 예쁜 구름이 떠 있었다.

실망한 것은….

조=영국 첼시 홈경기장인 스탬퍼드브리지 주변의 펍 분위가 너무 얌전해서 의외였다. 라이벌 리버풀과의 경기였는데도 너무 조용했다.

우=‘(팬들이) 경기 당일 아침부터 맥주 마시고 열광하겠지’ 생각했는데 골을 넣어도 잠깐 소리 지르는 게 전부였다.

이 여행은 당신들에게 무엇인가.

우=살아오면서 가장 큰 도전이었다. 75일간 이렇게 큰돈(1명당 약 600만 원 지출)을 쓴 적도 없었다. 내 삶의 변화의 시작점이고 인생의 전환점이다.

조=거창한 생각은 별로 안 했다. 다만 지금 아니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돈 벌어서 가족과 여행 가거나 은퇴해서 갔을 때, 그때도 축구를 보고 감흥이 느껴질까 생각하니 지금 꼭 가야 한다는 결심이 쉽게 섰다.

여행으로 바뀐 게 있다면….

우=아직 마음이 잘 정리되지 않았다. 다만 어제 은행에 가서 잔액을 보니 뭔가 해야 한다는 실감이 났다.

조=그동안 선택을 할 때는 꼼꼼히 장단점을 따지고 했는데 이제는 과감히 저질러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어떤 거든 장단점은 있게 마련이고, 일단 선택해서 잘 가꿔나가는 게 낫지 않을까 한다.

비슷한 여행을 꿈꾸는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우=너무 많은 곳을 돌아다니기보다는 좋아하는 선수나 팀을 중심으로 보기를 권한다.

조=암표를 사라.(웃음) 실제로 공식 입장권을 사전에 구입하기가 상당히 까다롭다. 암표는 경기가 시작되면, 또 협상만 잘하면 싸게 살 수 있다. 그리고 경기보다는 삶의 일부가 돼버린 유럽 축구의 열기를 느꼈으면 좋겠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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