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 차 한잔]‘제주 유배길에서 추사를…’ 펴낸 양진건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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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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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로 걷는 ‘추사 유배길’
문화가 있고 역사가 있다

그는 스스로를 제주에 유배했다. 일찍이 추사 김정희, 면암 최익현, 광해군 등이 유배됐던 ‘적막지빈(寂寞之濱·적막한 물가)’의 섬에서 유배문화를 연구하는 제주대 양진건 교수(사진)다. 만 54세의 추사는 제주로 유배돼 추사체를 만들었고 올해 54세인 양 교수는 추사길을 만들었다. 제주 출생인 그는 조선시대 유배지로만 기능했던 이 섬을 지키며 구석구석에 남겨진 유배인들의 서러움과 고독, 낭만에 몰입해왔다.

그는 1999년 ‘그 섬에 유배된 사람들’, 2008년 ‘제주유배문학자료집’에 이어 이번에 ‘제주 유배길에서 추사를 만나다’라는 책을 냈다. 그는 14일 개장한 ‘추사 유배길’을 기획한 ‘유배 전문가’이기도 하다.

“추사는 제주도에서 갇혀 살았지만 갇혀 있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8년 3개월의 유배 기간 정적들이 그를 죽이려 했고 부인마저 죽지만 벼루 열 개를 닳도록 연습하며 추사체를 완성했죠. 저도 그런 유배인이고 싶습니다.”

양 교수는 원래 유배와는 전혀 관계없는 교육학 전공자였다. 유배문학을 평생 연구했던 부친이 돌연 폐암으로 돌아가시고 난 후 유품을 정리하면서 처음 유배를 접했다. “아버지의 자료를 보다가 어느덧 자연스럽게 그 길을 걷고 있는 절 발견했어요. 아버지는 한문학 차원에서 연구하셨지만, 저는 문화적인 측면에서 시야를 더 넓히려 합니다.”

책 ‘제주 유배길에서 추사를…’은 양 교수가 조성한 ‘추사 유배길’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이야기를 엮은 책이다. “풍경이 아름다운 올레길 같은 길은 많죠. 이야기가 담긴 ‘길’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의 길은 지난해 4월 지식경제부가 지원하는 국책사업으로 선정돼 25억 원을 정부에서 지원받았다. ‘집념의 길’ ‘인연의 길’ ‘사색의 길’로 이뤄진 추사 유배길 코스에 개장 2주가 지난 지금까지 하루 평균 200명의 관광객이 다녀갔다.

유배길 중 저자가 꼽는 최고의 길은 1코스 집념의 길. 추사체를 완성하기 위해 애를 썼던 시절 추사가 거닐었던 동네길이다. 풍광은 그리 좋지 않아도 추사의 외로움과 추사체를 완성하기 위해 몰입했던 열정이 서려 있다. 무엇보다 부인이 죽고 나서 추사가 느꼈던 고독함이 담겨 있다. ‘어떻게라도 저승의 월하노인에게 애원을 하여/내세에는 우리 부부가 바꿔서 태어났으면/나 고향집에서 죽고 그 소식을 그대 천리 밖에서 듣는다면/그때 아마 이 기막힌 심정을 그대가 알리마는.’ 추사가 남긴 ‘부인의 죽음을 애도하며’라는 시다.

“발로 걷는 길도 필요하지만 때론 머리로 걷는 길도 필요합니다. 제가 꿈꾸는 길에는 문화가 있고, 역사가 있고, 이야기가 있습니다.”

양 교수는 ‘추사 유배길’ 다음으로 ‘광해왕 유배길’과 ‘면암 유배길’을 준비하고 있다. 광해왕 유배길은 광해군 본인과 주변 인물에 대한 사연이 담겨 있다. 광해군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동계 정온, 간옹 이익, 서곽 송상인은 제주로 유배됐다. 그런가 하면 광해군 본인도 1623년 폐위돼 강화도에 유배됐다가 제주로 옮겨져 5년을 살다 죽었다. 최익현은 대원군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1873년 지금의 ‘신제주’ 지역에 2년간 유배됐다.

“시대에 스스로 유배된 사람들을 격려하고 싶습니다. 사는 게 각박해지면서 삶이란 유배지에 스스로 유배돼 고뇌하는 모든 이가 역경을 딛고 일어선 추사를 통해 힘을 얻길 바랍니다.”

김진 기자 holyj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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