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크로 유라시아 횡단-⑮] 유라시아의 여정의 중간에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셋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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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11일 19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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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정 : 핀란드 헬싱키(7월8일~)

러시아 국경을 빠져나와 달리는 핀란드는 아주 깨끗하고 풍족해 보이는 산골 시골 마을들의 연속이다.

헬싱키는 아담하고 한적한 도시이다. 왠지 한 나라의 수도라고 하기 보다는 휴양지의 인상이다. 시간에 쫓기지 않게 된 우리는 모터사이클의 정비를 제대로 받기로 했다.

B사 한국지점의 바이크 딜러에게 부탁해 핀란드 정비소에 미리 연락을 해 놓고 아침 일찍 방문했다. 우리를 맞이한 정비사는 유리라는 이름의 건장한 사내였다. 한마디로 종합격투기선수같이 생겼다.


유리는 "다행히도 이번 주가 국제서비스주간이다"고 귀띔했다. 어제는 이탈리아 라이더가 다녀갔고 월요일에는 불가리아 라이더들이 정비를 받았다고 한다. 우리가 선택한 B사 모터사이클은 장거리 여행을 하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다. 아무래도 전 세계에 유통망을 가진 회사가 정비 보수 차원에서 유리한 측면이 많다.

■ 핀란드에서 제대로 된 첫 정비를 받다

또한 장거리 여행용으로 많은 기종을 만든다. 러시아나 몽골에서는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 때문에 보기 힘들고 정비소를 찾기 어렵지만 유럽에 들어온 순간 같은 기종을 타는 많은 라이더를 볼 수 있고 도시마다 정비소가 있었다. 정비소는 우리 같은 장거리 라이더들에게 친절했다.

유리도 그렇다. 부품수급에 적어도 2~3일은 걸린다고 하면서 방법을 찾아보자고 하더니 아직 팔리지 않은 새 모터사이클을 가져와 여기서 떼어서 고치고 부품이 공급되면 다시 그 바이크를 원상복구 하겠다고 했다. 떼었다 붙이는 일은 손이 두 배로 가는 일이지만 자기네들은 우리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렇게 해주겠다고 했다.


그 동안 셋째(심재신)는 귀국을 준비했다. 모터사이클을 한국으로 보내는 배편은 한국동호회 친구가 선적업체를 찾아주어 해결했고 유리가 그 주소로 같이 가서 모든 일을 다 해결해 주었다. 둘째와 넷째는 시내에 들어가 묵을 숙소와 헬싱키에서 할 일을 알아보았다.

다음날 셋째는 귀국했다. 어렵사리 귀국티켓을 구하고 마지막 점심을 같이 한 후 포옹하고 헤어졌다. 사람은 비행기로 하지만 바이크는 배로 지구를 거의 반 바퀴를 돌아가는 여정이다.

가장 어려운 구간을 함께한 동지다. 마지막 순간까지 혹시나 끝까지 가겠다는 선언을 해주기를 내심 기대했지만, 회사일도 있는데다 가족들이 허락해준 시간을 더 이상 연장할 수 없었다. 한 달 휴가를 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결심이었다. 게다가 이미 핀란드에서 기다리는 아내가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여정을 권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 상대적으로 짧은 휴가 탓으로 먼저 귀국하게 된 셋째

한 달 동안 생사고락을 함께한 사이다. 러시아와 몽골의 험한 여정을 함께하니 미운 정 고운정이 듬뿍 들었나보다. 어떤 때는 정말 밉고 말도 섞기 싫은 적도 있었지만, 어떤 때는 생존을 향해 같이 힘을 합치고 서로 포옹하며 고난을 이겨내기도 했다. 몽골 여정에서는 그의 손목이 아파서 전 대원이 걱정을 해주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그 짧은 순간에도 여러 해를 함께한 사이처럼 이별하는 게 쉽지 않았다.

그리고 모든 정리를 끝마치고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향하는 순간에는 붙잡고 싶다는 생각이 치밀어 올랐다. 그럼에도 애써 "먼저 잘 도착하라"고 손을 흔들며 "우린 이제부터 더 즐거운 여행을 할거다"는 마음에도 없는 농담을 건넨 건 왜일까? 막내(최태원)가 작성한 일기의 한 대목이다.

"셋째 형과 정확하게 두 번의 포옹을 한 것 같다. 첫 번째는 하바로프스크 비포장도로의 자갈무덤에서 좌우로 요동치던 순간이었다. 무언가 낌새가 이상해 바이크를 세워보니 뒤편에 셋째형이 쓰러져 있는 게 아닌가. 곧장 뛰어가 그를 일으켜 세우며 무사함을 확인한 후에 뜨거운 포옹을 나눴다. 그리고 두 번째가 이번에 헤어질 때다. 한인식당에서 만찬을 끝으로 그를 택시 태워 보낼 때 자연스럽게 그를 끌어안게 됐다. 이제는 '호텔과 레스토랑에 가자'는 셋째형의 투정 아닌 투정은 못 듣겠지만 그 잔소리마저 그리울 것 같다. 여행준비 때부터 예정된 일이었지만 막상 닥치자 당황스럽다. 이번여행을 하면서 유라시아 횡단을 했다는 것에 뿌듯함, 성취감보다는 피보다 진한 물을 나눈 사람들이 생겼다는 게 더 기쁘다. 재신이형! 도착하면 반드시 주먹고기 사주세요."


셋째를 보내고 헬싱키에서 스웨덴의 스톡홀름으로 향하는 페리에 탔다. 스톡홀름부터 위로 스웨덴과 핀란드를 쭉 올라간 후 내려오면서 노르웨이의 피요르드 해안을 구경할 요량이었다. 우리가 탄 페리는 백화점이 딸린 호텔 하나를 바다위에 띄워 놓은 듯했다.

그리 멀지 않은 거리임에도 오후 5시에 태워 아침 9시에 내려줬다. 페리 안에는 식당, 카지노, 댄싱 클럽, 가라오케, 술집, 면세점 등등 승객들의 지갑을 노리는 함정들이 즐비했다.

하루 숙박비에 이동거리까지 감안할 때 세 명이 270유로 정도면 궁색하지 않은 선택이다. 하지만 배 안에 즐비한 각종 유혹을 참고 버텨야 하기에 여유로워 보이는 다른 여행객들과 비교하면서 상대적인 빈곤을 느껴야만 했다. 장거리 여행자들에게는 금욕적인 행동이 필수적이었다.


이런 기분을 달래기 위해 면세점에서 괜찮은 샴페인을 한 병 사서 바람 부는 꼭대기 데크에 올라가 러시아 횡단을 마친 기념으로 축배를 들었다.

작성자 = 이민구 / 유라시아횡단 바이크팀 '투로드' 팀장
정리 =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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