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 나의 길]<33>경기과열과 부동산 투기

  • 입력 2009년 5월 8일 02시 56분


1970년대 중반 이후 부동산 투기가 극성을 부리자 정부는 1978년 8월 ‘부동산 투기 억제 및 지가 안정을 위한 종합 대책’을 발표했다. 1978년 한 아파트 분양 현장에 몰려든 인파. 동아일보 자료 사진
1970년대 중반 이후 부동산 투기가 극성을 부리자 정부는 1978년 8월 ‘부동산 투기 억제 및 지가 안정을 위한 종합 대책’을 발표했다. 1978년 한 아파트 분양 현장에 몰려든 인파. 동아일보 자료 사진
1975년 이후 사상 최대 호황국면

수요 인플레-부동산 투기 불러

日참고 부동산 거래신고제 등 도입

제1차 석유파동의 충격으로 인한 세계적인 경기후퇴 국면은 1975년 여름 최저점에 도달한 뒤 회복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한국도 그해 3분기(7∼9월)부터 경기가 빠르게 회복되고 수출도 예상 외의 신장세를 보였다. 농업생산도 풍작을 이뤄 국내 경제활동이 상향 추세를 지속함으로써 한국 경제는 다시 고도성장 궤도로 복귀하게 됐다.

중화학공업의 수출 증대, 중동으로부터의 건설 수입(收入), 국내의 왕성한 개발투자, 소비의 폭발적 증가가 합세해 사상 최대의 호황 국면을 맞이하게 됐다. 경제기획원(EPB)은 이에 고무돼 1976년 ‘하반기 경제전망 및 대책’을 수립해 경제성장률을 대폭 상향 조정했다. 그러나 이것은 나의 큰 실수였다. 이때는 기획원, 재무부, 통화 당국이 합세해 과속 성장에 브레이크를 걸어야 했는데 유신체제를 합리화하는 논거로 고도성장을 내세우고 있던 당시의 정치적 분위기 속에서 좀처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1976년 13.4%, 1977년 10.7%, 1978년에는 11.0%라는 경이적인 고속 성장이 계속됐다. 이 같은 경기과열로 각종 물자가 부족해지는 현상이 표면화되면서 수요 인플레이션이 일어났고 부동산 투기가 극성을 부리는 사태에 직면하게 됐다. 재무부는 늦게나마 1977년 5월 저축성예금 증가액의 40%, 요구불예금 증가액의 70%를 동결하는 유동성 규제 강화 조치를 취했는데 건설부 소관인 부동산 투기에 대해서는 어찌해야 할지 난감하기만 했다. 나는 어느 날 강경식 물가국장을 불러 일본에서 부동산 정책에 관한 서적과 일본의 정책 자료를 수집해 오라고 지시했다.

강 국장 일행은 일본에서 관련 서적과 정책 자료를 얻어 가지고 돌아왔는데 정책 자료에는 바로 우리가 고민하던 부동산 투기에 관한 정책도 포함돼 있었다. 자료를 살펴보니 부동산 거래 신고제와 허가제가 주요 내용으로, 어떤 지역에 부동산 투기가 일어나면 정부 당국은 모든 부동산 거래를 신고하도록 명령한다. 그리고 그에 대해 거래세를 부과하는데 세금을 적게 내기 위해 시가보다 현저히 낮은 가격을 신고하면 정부는 선매권을 행사해 그 신고 가격으로 해당 부동산을 매입한다. 이 조치로도 부동산 투기가 가라앉지 않을 때는 토지거래허가제를 발동해 정부가 부동산 거래를 직접 통제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즉시 이를 참고해 법안을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다만 선매권을 행사해 토지를 매입하자면 막대한 예산이 필요한데 현실적으로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기획원 간부들과 논의해 보니 선매권이 없더라도 부동산 거래신고제와 허가제만으로도 상당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으니 선매권은 법안에 포함시키지 말자는 의견을 냈다. 나도 이에 동의했다.

빨리 법안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해야 하는데 그에 앞서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8월의 휴가철이라 대통령이 경남 진해시 저도 별장에 머물고 있었다. 청와대 비서실에 연락해 시급한 사안의 결재를 받아야하니 그곳에 갈수 있도록 연락을 취해 달라고 요청했다. 마침내 나는 해군 함정을 타고 저도로 갔다. 매우 간소한 대통령 별장이지만 6홀 골프장도 있었다. 부동산 입법안을 보고하자 대통령은 “해결책은 있구먼”하며 흔쾌히 결재하고 여기까지 왔으니 골프를 치고 가라고 말했다. 저도에서 돌아온 후 나는 1978년 8월 8일 ‘부동산 투기 억제 및 지가 안정을 위한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여담이지만 몇 년이 지나 일본 의회에서 우스운 일이 있었다. 한 의원이 부동산 투기 방지 대책에 관해서는 한국에서 배워야 한다고 역설하고 한국의 거래신고 및 허가제도를 소개했다는 것이다. 알고 보니 일본 정부 당국은 우리가 모방한 법안을 만들어 놓고도 시행하지 못했고 이 때문에 그 의원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전 국무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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