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된 이웃을 위하여 20선]<2>단순한 기쁨

  • 입력 2008년 12월 10일 02시 59분


《“희망을 소망과 혼동하지 말자. 우리는 온갖 종류의 수천 가지 소망을 가질 수 있지만 희망은 단 하나뿐이다. (…) 희망은 삶의 의미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만약 삶이 아무런 목적지도 없고, 그저 곧 썩어 없어질 보잘것없는 육신을 땅속으로 인도할 뿐이라면 살아서 무엇 하겠는가? 희망이란 삶에 의미가 있다고 믿는 것이다.”》

희망은 하나뿐,더불어 사는 삶

피에르 신부는 “20세기 프랑스가 낳은 세계 최고의 휴머니스트”라고 소설가 최인호 씨는 말한다. 지난해 1월 96세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프랑스에서 ‘가장 좋아하는 프랑스인’을 꼽을 때마다 늘 상위에 올랐다. 이 책은 그가 1997년에 남긴 자전에세이집이다.

프랑스인은 왜 그렇게 피에르 신부를 좋아했을까. 그는 1912년 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19세에 유산을 포기하고 수도회에 몸을 던졌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레지스탕스로 활약했고 전쟁이 끝난 뒤엔 국회의원으로도 활동했다. 무엇보다 그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평생을 바쳤다. 1949년 그가 파리 근교에 부랑자와 전쟁고아 등에게 안식처를 마련해준 것이 현재 44개국으로 퍼진 빈민구호 공동체 ‘엠마우스’의 출발이 된다.

에세이에서 신부가 전하고자 하는 말은 명확하다. ‘타인과 더불어 사는 기쁨, 그 단순한 기쁨’을 얘기하려 한다. 하느님을 따르는 수도사 신분으로 종교나 복음에 관한 언급이 없을 리 없다. 하지만 그는 그걸 강요할 생각은 전혀 없다. 단지 인류라는 ‘상처 입는 독수리들’에게 자유와 존엄, 건강과 형제애를 전할 뿐이다.

“한 가지 중요한 점을 밝히고 넘어가야겠다. 오직 복음을 따르는 엠마우스 운동의 공동체들은 종파와는 절대적으로 무관하다. 우리는 그 누구에게도 ‘신자세요? 교회에 다니십니까’라고 묻지 않는다. 처음 오는 사람이 있으면 그저 이렇게 물을 뿐이다. ‘배고프세요? 졸리십니까? 샤워를 하시겠습니까?’ 그리고 미사에 가건 아니면 다른 모임에 가건 그것은 전적으로 각자의 자유다. 분명히 말하지만 그들 가운데 아주 적은 수만이 신앙생활을 한다.”

사제라는 신분으로 레지스탕스에 가담했던 것도 같은 이유였다. 프랑스 독립이나 근시안적 민족주의 때문에 저항에 나선 게 아니었다. 민족과 종교를 넘어 인류는 모두 한 형제라는 관점에서 ‘배타적 민족주의와 인종적 편견’이 짙게 깔린 세계대전은 그냥 보아 넘길 문제가 아니었다. 쫓기는 유대인을 피신시키며 그들에게 신발을 벗어주고 험준한 피레네 산맥을 맨발로 넘기도 한다. “레지스탕스에 가담하면서 내 삶과 신앙에 새로운 한 장이 열리게 된다. 솔직히 말하건대 그 선택에는 정치적 동기라곤 없었다.”

이런 그이기에 피에르 신부가 전하는 복음은 불가지론자나 타 종교인이라 해도 새겨들을 만하다. 신부임에도 가톨릭을 감싸고도는 태도는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더 엄하게 꾸짖고 지적한다. 심지어 교황마저도. 이 때문에 “인간은 밤바다를 항해하는 한 척의 배와 같다. 복음과 교회는 바닷가에 있는 등대와 같다”는 그의 말도 불편하지 않다.

‘단순한 기쁨’의 한 줄 한 줄에는 평생 타인에게 헌신하며 살아온 이의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다. 신부가 말하는 단순한 기쁨이 사실은 얼마나 숭고한 기쁨인지. 결코 단순하지 않은, 그 사랑의 기쁨이 충만하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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