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소통]갈수록 관객 몰리는 보테로展…작품-전시 숨은 얘기도 ‘푸짐’

  • 입력 2009년 8월 11일 03시 03분


페르난도 보테로의 ‘얼굴’은 조그만 눈 코 입이 파묻힐 듯 커다란 얼굴을 가진 소녀의 이미지를 담고 있다. 작은 얼굴이 대세라지만 관람객들에게는 가장 인기 높은 작품 중 하나다. 옅게 화장한 얼굴에 귀고리를 하고 흰 칼라를 단 초록 블라우스를 입은 소녀, 요모조모 뜯어보면 볼수록 사랑스럽다. 사진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페르난도 보테로의 ‘얼굴’은 조그만 눈 코 입이 파묻힐 듯 커다란 얼굴을 가진 소녀의 이미지를 담고 있다. 작은 얼굴이 대세라지만 관람객들에게는 가장 인기 높은 작품 중 하나다. 옅게 화장한 얼굴에 귀고리를 하고 흰 칼라를 단 초록 블라우스를 입은 소녀, 요모조모 뜯어보면 볼수록 사랑스럽다. 사진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종우는 어떤 그림이 가장 좋았어?” “응, 이거!”

엄마 곽정렬 씨(42·서울 양천구 목동)의 질문에 다섯 살 종우는 망설임도 없이 곡예사 그림을 손가락으로 짚어낸다. 곽 씨는 “자녀와 함께 보기 좋은 전시라는 얘기에 동네 엄마들끼리 왔다”며 “작가 이름도 모르는 문외한이라 걱정했는데 막상 와보니 그림이 편하고 친근해 아이도, 어른도 보는 내내 즐거웠다”고 말했다.

사람도, 동물도, 과일도 ‘푸짐하게’ 그리는 콜롬비아 출신 화가 페르난도 보테로. 미술애호가와 비애호가를 가리지 않고 서울 덕수궁미술관에서 열리는 보테로전에 대한 관심이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전시 중반을 넘긴 요즘엔 평일 5000명, 주말에는 1만 명 이상 관람객의 발길이 이어진다. 보테로의 이름은 몰라도 통통한 스타일의 그림에 눈이 익은 사람이 많은 데다 어둡고 우울한 현대미술에 질린 사람들에게 그림 속에 녹아든 풍자와 익살이 웃음을 주기 때문. 감탄을 자아낼 정도로 완벽한 색채와 형태의 조화를 갖춘 89점의 유화가 전부 대작이어서 ‘입장료가 아깝지 않은 전시’라는 입소문도 퍼지고 있다.

각박한 현실에 지친 사람들에게 넉넉한 위안을 안겨주는 ‘푸근한’ 작품들. 그냥 봐도 즐겁지만 모르고 지나칠 법한 비밀을 작품 속에서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9월 17일까지(관람시간 오전 9시∼오후 8시 반). 02-368-1414

캔버스 가득 ‘큰 얼굴 소녀’ 왜 인기?

① 세 가지 색의 비밀은?

빨강 노랑 파랑으로 그린 거대한 ‘꽃 3 연작’은 관람객들이 가장 사랑하는 작품 중 하나다. 삼원색을 합치면 콜롬비아 국기가 된다. 특히 보테로가 태어난 메데인은 네덜란드에 이어 세계 최대 꽃 생산 및 수출지여서 꽃 연작에서 고향에 대한 그의 깊은 사랑을 엿볼 수 있다.

② 납치 혹은 ‘대략 난감?’

그리스 신화 가운데 ‘황소로 변한 제우스가 아름다운 에우로페를 납치한다’는 내용을 주제로 그린 ‘에우로페의 납치’. 원래 사건과 달리 에우로페의 몸에 짓눌린 황소는 거의 쓰러지기 일보 직전! 다리에 불끈 힘줄이 솟은 황소와 “이랴, 어서 가자”고 외치는 듯한 에우로페를 비교 감상하는 것이 포인트.

③ 남자야 여자야?

‘죽마를 탄 광대들’은 얼핏 한 쌍의 남녀 같지만 사실 둘 다 남자다. 여장남자의 살짝 드러난 앞가슴 털이 첫 번째 증거다. 그림을 보면서 다른 증거를 더 찾아보는 것도 흥미롭다.

④ 엉덩이 점의 비밀은?

‘샤워하는 여인’을 보면 오른쪽 엉덩이에 작은 점이 보인다. 이 점을 힌트로 삼으면 동일 모델을 그린 듯한 또 다른 누드를 찾을 수 있다.

⑤ 같은 점과 다른 점?

보테로는 고전을 그대로 모방하지 않고 자기 식대로 재해석한다. 반다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경우 둥근 거울을 통해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남자 2명이 보이지만 보테로 작품에는 열린 문만 보인다.

⑥ 붉은 망토를 든 투우사의 이름은?

투우에서는 여러 투우사가 등장한다. 처음에 말을 타고 등장하는 피카도르는 소의 목 뒤를 찔러 자극한다. 그 다음 뾰족한 창을 들고 등장해 소를 유인하는 반데리예로가 나온다. 끝으로 빨간 망토(뮬레타)를 들고 나오는 마타도르가 투우의 주역. 보테로전에서는 마타도르 복장을 한 자화상과 경기의 다양한 단계를 확인할 수 있다.

⑦ 인종 전시장?

모래놀이 하는 어린이와 비키니 차림의 여자들, 공놀이를 하는 남자들이 모여 있다. ‘해변’에 나온 사람들의 피부색과 머리카락은 천차만별이다. 라틴의 다양성을 드러낸 작품으로 다수의 인물이 등장하는 보테로 그림에선 어김없이 인종의 다양성을 확인할 수 있다.

⑧ 라틴 사회의 축소판?

높은 산을 배경으로 성당이 보이고 그 앞 좁은 거리에 경찰 수녀 어린이 창녀 등 많은 사람이 몰려 있다. ‘거리’는 라틴의 전형적 풍경과 특징을 잘 드러낸다. 곤봉을 든 경찰의 모습은 권위적이고 경직된 사회를 암시한다. 모든 이의 시선이 어긋난 이미지를 통해 라틴의 혼란스러운 실상을 읽게 한다.

⑨ ‘얼큰 공주’가 최고의 매력녀?

길이 2m가 넘는 캔버스를 꽉 채운 ‘얼굴’. 작은 얼굴이 대세라지만 한국인들은 이 무뚝뚝한 ‘얼큰’ 소녀를 무척 좋아한다. ‘얼굴’은 관람객들이 가장 많이 사가는 엽서 중 하나다. 다시 한 번 초록 머리띠에 빨강 귀고리, 살짝 화장한 소녀를 살펴본다. 자꾸 보면 볼수록 정이 든다. 마음이 푸근해진다. 보테로 그림이 언제나 그렇듯….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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