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삶의 기록-자서전 30선]<29>네루 자서전

  • 입력 2007년 3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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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안 가 근처의 마을들 전체가 텅텅 비다시피 하면서 들판은 온통 모여드는 남녀노소로 가득 찼다. 그들은 “시타 람” 하고 일제히 소리쳤다. 그 고함소리는 하늘을 울리고 이웃마을까지 메아리쳐 마치 “시타-라-아-아-아-암”이라고 외친 것처럼 들렸다. 그러면 사람들은 물결처럼 때로는 전속력으로 달음박질쳐 왔다.》

인도 독립운동 역정 감동적 기술

개인의 이력이 한 국가의 역사인 경우는 흔치 않다. 그러나 1936년 나온 네루의 자서전은 네루의 경험과 인도의 기록이 부합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이 자서전은 반영(反英)운동으로 감옥에 갇힌 네루가 감옥 생활의 고독을 이기고 독립운동의 과정에서 자신을 찾기 위해 1934년 6월부터 1935년 2월에 걸쳐 쓴 것이다. 여기엔 수동적 젊은이에서 독립운동가로 변모하는 네루의 개인 기록과 독립운동사라고 부를 수 있는 인도 근대사의 흐름, 특히 간디의 활약상이 잘 그려져 있다.

자서전은 카슈미르에서 갠지스 유역의 알라하바드로 이주한 부유한 변호사의 아들인 네루가 과거를 되돌아보는 것으로 시작된다. 네루는 자신을 성공한 ‘영국 신사’로 만들려는 아버지의 뜻을 따라 영국에 유학하여 유명 사립학교와 케임브리지대에서 공부하고 변호사가 되어 인도로 귀국하였다. 법률직에 매력을 느끼지 못한 채 아버지 일을 돕던 네루는 1916년 중매로 만난 카말라와 결혼식을 올리며 필부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곧 누에고치같이 안온한 집을 떠난 네루는 험한 세상으로 나가 지도자로서 국가적 서술의 주인공이 되었다. 1919년 영국군이 비무장 인도인 수백 명을 학살한 사건이 바로 네루 생애의 ‘루비콘 강’이었다. 그는 사건을 정당화하려는 영국군 장교들의 냉혹한 말투와 태도를 접하고 그 순간부터 영국의 ‘정의’에 대한 신뢰를 접고 간디가 이끄는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인용한 발췌문이 보여 주듯, 도시에서 자란 네루는 1920년의 한여름에 갠지스 평원의 농촌을 방문하여 농민의 가난한 삶을 목격하였다. ‘계시’처럼 농민을 ‘발견’한 네루는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고 농민의 열악한 처지를 동정하고 그 해결 방안에 대해 고민하면서 그들의 지도자로, 독립운동의 리더로 부상하였다. 이 자서전에는 네루의 개인적 경험을 넘어 인도 독립운동의 주요 인물과 움직임도 함께 서술되었다.

간디와의 만남은 네루에게 영속적인 영향을 남겼다. 자서전에는 ‘진리의 힘’ 등 모호한 표현을 쓰며 단식과 비폭력의 기이한 투쟁 방식을 동원하는 간디와 달리 종교와 정치를 구분하고 종교를 사적(私的) 영역으로 밀어내려던 네루의 속내가 엿보여 흥미롭다. 그럼에도 혁명적 개혁을 꿈꾸는 네루와 계급투쟁을 부정한 간디는 상대의 장점이 독립운동에 필요하다는 점을 알고 서로 손을 잡아 감동을 준다.

네루가 영어로 쓴 자서전은 노벨문학상을 받은 타고르와 영국의 헉슬리가 극찬할 정도로 그 필치가 매우 빼어나다. 타고르는 네루와 같은 지성인이 정치를 하는 현실이 유감이라고 말했으나 네루는 독립한 인도의 총리로 75세까지 살았다. 네루의 자서전은 45세의 젊은 나이에 서술된 반생의 기록으로 독자에게 ‘뭔가’를 감춘다는 인상을 주는 약점이 있으나 인도 근대사라는 보너스를 선사하는 더 큰 장점이 있다.

이옥순 연세대 연구교수 인도근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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