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달라이 라마]<5·끝>수행자들을 위한 고언

입력 2006-05-05 03:00수정 2009-10-08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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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인도 다람살라의 남걀 사원에서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법문을 마친 직후 달라이 라마(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청전 스님(오른쪽)이 지켜보는 가운데 한국의 한 여성 불자에게 작은 불상을 주며 격려하고 있다. 달라이 라마는 한국은 티베트보다 불교 전래가 빨라 좋은 불교 전통과 문화가 있으니 티베트 불교를 전하기보다 양국 불교의 장점을 살리는 것이 좋겠다고 말한다. 사진 제공 청전 스님
한번은 단체로 왔던 한국 신도 한 분이 어떻게 하면 공부 중에 게으름을 떨쳐 버릴 수 있는지를 달라이 라마에게 물었다. 즉, 잠이 올 때 바늘로 꾹 찔러서 정신 바짝 차릴 듯한 그런 조언 한마디를 부탁한 것이다. 그대로 통역을 했더니 달라이 라마는 “제가 게으른 사람인데요”라고 대답했다. 다들 크게 웃었다. 달라이 라마는 이어 홱 돌아서 필자를 손으로 가리키며 “당신도 게으르죠” 하셨고 다시 좌중에 웃음이 터졌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 출가인이나 재가인 모두 공부할 때 게으름이 큰 장애입니다. 그러나 이 게으름을 쫓기 위한 한마디는 없습니다. 늘 지금 이 삶의 뿌리가 고(苦)인 것을 잊지 말고, 또 무상함을 놓치지 않을 때 점차 큰 보리심이 일어날 것입니다”라고 설명했다.

달라이 라마는 한없이 인자하고 웃음이 넘치는 분이다. 하지만 그런 달라이 라마가 준엄한 비판을 가할 때가 있다. 불심(佛心)의 근본을 잃고 물질과 허영을 좇는 스님들에 대해서다.

지난해 설날 아침 달라이 라마는 덕담이라기보다 좀 서글픈 말씀으로 새해 법문을 시작했다. 티베트 사람들은 설날 아침이면 달라이 라마의 덕담을 듣고 축복을 받으러 새벽부터 긴 줄을 서서 기다린다.

“우리가 망명해 온 지 46년째입니다. 그러나 내가 살고 있는 이 법당이 인도에서 가장 작고 초라한 절이 되어 버렸습니다. 요즘 티베트의 이름 가진 스님들은 수행이나 공부보다는 외국에 다니면서 시주 받아 큰 절 짓고 큰 불상 만드는 게 일인 것 같습니다. 신도들에게 귀감이 될 큰 스님들이 이름이나 타이틀은 토끼 귀처럼 길지만 그들의 덕행이나 공덕은 토끼 꼬랑지처럼 조그만 것 같습니다.” 설날에 침통한 목소리로 이런 뜻밖의 비탄의 말씀을 한 것이다.

그 후에도 달라이 라마는 공부하지 않고 외국에만 다니는 스님들에 대해 심한 비판의 말을 하고 있다. 올 칼라차크라 행사장에서도 “요 근래 이름 있는 스님들이 대만 등 불교국가에 다니면서 법을 이용하여 재산을 쌓고 호화롭게 살아가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면서 이것은 큰 죄악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달라이 라마의 이 같은 준엄한 비판은 예전에는 없었던 일이다. 정말 필자 생각으로도 큰 문제가 되었다. 옛날 망명 나와 가난할 때의 순수한 모습, 법을 지키고 공부하려는 모습은 보기 어렵다. 좀 이름이 있다 하면 외국에 다 나가 있고 아예 이쪽엔 다시 오지 않는다. 온다 해도 자기 개인 절을 많이 짓는다. 절 옆에 또 절을 짓고 있다.

달라이 라마(오른쪽)가 청전 스님과 한국과 티베트 불교의 상호교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후 기념촬영을 했다. 사진 제공 청전 스님
1959년 달라이 라마가 티베트에서 히말라야를 넘어 인도로 망명 왔을 때부터 이곳 다람살라에 머무른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지금 우타란찰 주의 무소리란 산중턱에 짐을 풀었다. 이듬해 여기로 옮겨와 실질적인 망명정부를 수립했다.

달라이 라마는 미래의 티베트에 무엇이 중요한지를 간파했다. 즉 티베트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경제 발전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내려오던 종교와 문화의 전통을 살리는 것이 급선무라고 판단한 것이다. 비록 나라는 빼앗겼어도 이 티베트의 정신과 문화가 있다면, 역사는 바뀌는 것이니 언제라도 자기 땅에 되돌아갈 희망이 있다는 게 그의 믿음이다.

처음 달라이 라마를 따라 넘어온 티베트 난민 1세대는 이제 거의 세상을 떠났고, 지금은 남은 노인들과 인도에서 태어난 제2세대가 대부분이다. 그동안 절도 많이 생겼고 불교학 학교도 생겼다. 필자가 1987년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다람살라가 지금같이 복잡하고 시끄러운 동네가 아니었다. 정부 호텔 한 개와 몇 개의 초라한 여관, 상가, 식당이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달라이 라마의 1989년 노벨 평화상 수상 이후 큰 변화가 왔다. 지금은 많은 호텔, 상가, 식당이며 이상한 이름의 무슨 요가수련소 등등 저 멀리 산까지 파헤쳐 가며 많은 건물이 계속 들어서고 있다. 한국인도 끊이질 않는다. 심지어 한국 식당이 두 개나 생겼다.

망명 나온 세월이 길어지다 보니 티베트 정신이 희석되어 가는 것을 많이 보게 된다. 처음 여기 왔을 때 달라이 라마의 법문이 있다면 티베트 상점은 100% 문을 닫고 법회장에 나갔다.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달라이 라마가 법문한다 해도 가게 문을 열고 영업을 한다. 이렇게 물질의 힘은 큰가 보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어느 절 개원식 때 일이 생각난다. 달라이 라마는 법당에 앉자마자 크게 만들어 놓은 불상을 가리키며 “만약 훗날 이 불상이 넘어지거나 한다면 수십 명이 깔려 죽게 될 수도 있는데 그땐 부처가 사람 죽였다는 소문이 나겠지”라면서 법문 이전에 따가운 비판부터 했다. 특히 그날 대만에서 시주했다는 많은 사람이 특별석에 앉아 있었는데 그곳을 향해서 “보시한다는 자체야 좋지만 이 보시가 어떻게 쓰이는지 알고 하십시오”라며 좀 무안한 말씀을 했다. 내가 봐도 정말 큰 건물에 큰 불상이었다.

달라이 라마가 자주 하는 말씀이 가슴을 때린다.

“지금 이 시대에는 절에 이렇게 많은 스님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출가하여 청정한 부처님 제자로 수행해 가든지 사회에 봉사하는 출가의 삶은 인정되지만 그냥 승가에 있어 편히 먹고 살기 위한 무위도식의 그런 출가인은 없어야 됩니다. 꼭 청정하고 공부하는 바른 출가인이 승가에 있어야만 합니다.”

■ 연재를 마치며

달라이 라마는 필자에게 몇 번이나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한국에 가면 티베트 불교를 전하려 하지 말라. 내가 전 세계를 다니면서 불교를 말하는 것은 그곳에 불교가 없기 때문이다. 당신 나라는 우리보다 빠른 불교 전래국가로 좋은 전통과 문화가 있으니 그것을 살리는 것이 좋고, 훗날 거기에 티베트 불교의 장점을 덧붙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우선 당신은 두 나라 불교의 교량 역할을 하라. 그리고 당신 나라에서 어떤 고급 밀교 수행법을 말하는 것보다 끝까지 삶의 뿌리가 고(苦)와 무상(無常)임을 가르쳐라. 당신 나라는 첨단의 나라, 편리하고 빠른 나라여서 고와 무상을 생각할 틈이 없는 나라니까. 거기에 보리심을 얘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달라이 라마는 한국에 가고 싶어 하지만 지금까지 그 뜻이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근래에 뜻있는 여러분이 달라이 라마의 한국 방문을 추진해 온 것도 사실이지만 모두가 정치적 이유로 좌절당하고 말았다. 중국의 눈치를 보는 것 때문이리라.

한번은 한국에서 온 어느 신도분이 달라이 라마에게 “꿈에 존자님이 저에게 오셔서 뭘 주셨는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요”라고 물으니 “당신 꿈일 뿐이지요. 제가 어떻게 한국에 갑니까. 지금도 제가 초청은 받았지만 정부에서 비자 발급을 안 해 주어 못 가는데…. 즉, 현실에도 못 가는데 어찌 꿈에라도 갈 수 있겠어요” 하시며 웃었다.

해마다 유럽, 북미, 남미 등에서 달라이 라마의 초청은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현대 세계의 정신적 스승으로 진리(法)에 대한 당신의 가르침을 듣고자 수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 예를 들어 호주가 달라이 라마를 초청했을 때 중국에서는 즉각 이를 취소하라고 주장하며 만약 초청한다면 경제적 제재를 가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그때 호주는 다음과 같이 반박하며 초청을 성사시켰다. “우리나라에 어떤 경제적 제재를 행동으로 옮긴다고 하더라도 좋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단순히 물질적인 행복을 추구하는 나라가 아니다. 이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신의 문제, 마음의 행복이기에 우리는 끝까지 달라이 라마를 초청할 것이고, 그분의 훌륭한 가르침을 받을 것이다.”

하루빨리 달라이 라마의 방한이 성사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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