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달라이 라마]<4>세계 포교에 대한 열정

  • 입력 2006년 4월 28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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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 라마는 다른 나라에 가서 연설하거나 불교를 얘기할 때 앞으로 인류가 무엇에 중점을 두고 살아가야 하는가를 말한다. 이 세계가 편리와 행복을 추구하면서 일으키는 자연 파괴를 막으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가르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앞으로 인류는 두 가지를 규명해야 진정한 행복을 이룰 수 있다고 당신은 강조한다. 그 두 가지는 인간 의식의 규명과 몸의 내적인 성숙으로서 쿤달리니(丹·단)의 각성이다. 의식의 규명은 명상을 통한 깨달음이고, 쿤달리니의 각성은 명상을 통한 에너지의 전환이다. 즉, 명상만이 인류를 구제하고 서로 평화를 이루면서 살아가게 할 수 있는 기본이요 필수조건이란 설명이다.》

하긴 어느 종교에나 이름은 다르지만 다 명상이 있다. 침묵 속에서 기도하는 것이나 자기 내면을 보는 수련이 다 명상이라고 본다. 요즘 한국에서도 명상 붐이 일어나고 있다는데 돈이 있어야 참살이(웰빙) 명상을 할 수 있다니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돈으로 명상하고, 명상하는 데 돈이 든다니…. 생활 속에서 명상하는 올바른 방법을 말해 주는 사람이 어찌 없는가.

달라이 라마는 연중 2회는 꼭 명상에 들어간다. 그땐 어떤 알현이나 공식적인 정교(政敎)의 일을 안 하고 명상에만 전념한다. 주로 여름 우기 때와 티베트 설날 전에 그런 일정을 잡는다. 짧게는 보름에서 20일, 한 달을 명상 속에 있다. 이 바쁜 세월에 또 그런 위치와 연세에도 시간을 내어 정진하는 것을 보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하긴 불경에도 부처님이 안 보일 때 제자들이 찾아 보면 숲 속이나 나무 밑에서 선정(禪定·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고 한곳에 집중함) 속에 계시는 대목이 많이 나온다. 사실 필자가 1987년 8월 1일 개인적으로 달라이 라마를 처음 만난 곳은 여기 다람살라가 아닌 라다크에 있는 초클람사르라는 조그만 절이었다. 그때 당신은 그곳에서 묵으셨다. 인도에 도착해 이 소식을 알고 라다크에 올라가서 절 사무실에 찾아갔는데 “지금은 명상 중이라 불가능하다”고 했다. 알고 보니 7월 한 달 동안 명상 중이었다. 명상이 끝난 후에는 가능하다고 해 끝날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숙소로 돌아왔는데 이튿날 숙소로 연락이 왔다. 8월 1일 달라이 라마께서 만나겠다고.

어쨌든 한 달간의 강도 높은 명상을 끝낸 직후였는지 달라이 라마는 어떤 대단한 힘을 가졌고, 그러면서도 소탈하고 솔직했으며, 법에 정통해 믿음이 절로 갔다. 나는 긴장과 함께 삭발하고 목욕재계하고 당신의 알현실에 들어갔지만 당신은 맨발에 인도제(製) 싸구려 샌들을 신고 맞아 주었다. 합장과 함께 “프롬 코리아(From Korea)!”라며 긴장을 풀어 주면서 대화가 시작되었다. 사실 그때 나눈 1시간 반 정도의 이야기에서 나는 내 삶의 기반을 찾았다. 훗날 내 개인적인 수행기를 쓴다면 이때 받은 영감과 몸으로 겪은 내적인 체험을 꼭 밝히고 싶다.

인도에서 열리는 달라이 라마의 법회는 대개가 일주일에서 보름까지 계속된다. 그것도 하루 종일 하는 것이어서 어지간한 인내력 없이는 의자도 없는 맨땅에서 몇날 며칠 동안 법문 듣는 일이 쉽지 않다. 더러 점심 이후의 오후 법문에는 스님이고 신도고 간에 졸음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한번은 그런 시간에 원숭이란 놈이 법상 위의 텐트에 뛰어내려 지나가는 일이 있었다. 모두들 속으로 ‘저 무례한 놈 같으니’라고 하는데 달라이 라마는 “걀와린포체(티베트인들은 달라이 라마를 이렇게 부른다. ‘고귀한 왕’ ‘보석 같은 임금’ ‘왕 중의 왕’이란 뜻이다)가 법문하는데 지금 누가 조는가 하고 원숭이가 살피러 왔으니 졸지 마세요”라고 해 웃음을 자아냈다.

당신의 법문이 있을 때는 항상 외국인을 위한 자리를 따로 한쪽에 배치해 주고 영어 동시통역도 준비된다. 올해 1월 남인도에서 열렸던 칼라차크라(‘시간의 수레바퀴’란 뜻으로 음악과 법문 등을 통해 대중에게 시간의 경과에 따라 삶과 죽음이 어떻게 바뀌는지 보여 주는 입체적 법회)에는 외국인 전용 자리에 6000여 명이 모인 적도 있다. 주로 서양인이지만 요즘엔 대만 일본 한국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지역에서도 직접 법문을 듣기 위해 오는 이가 늘어 간다.

당신은 법문 중 가끔 울먹이며 목이 메어 진행을 못 할 때가 있다. 나는 처음에 뭐 법문 중에 저런 일이 있나 하고 의아해 했지만 해를 거듭하면서 그 내용을 알게 되었다. 법과 진리를 설하다가 석가모니 부처님의 6년 고행담을 이야기할 때는 거의 설법이 중단되기 마련이다.

달라이 라마가 1987년 10월 인도 다람살라 남걀 사원 안의 티베트 망명정부 집무실에서 자신을 찾아온 서양 과학자들과 함께 불교 명상의 과학적 원리와 효력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사진 제공 청전 스님

불교의 근본인 보리심(菩提心)과 공성(空性)을 상세히 설명하는데 유독 보리심을 말할 때면 울음을 터뜨린다. 당신 말씀에 따르면 보리심은 깨달음의 씨앗이다. 티베트 불교의 최고 논서로 알려진 ‘람림’을 강의할 땐 여러 차례 법문이 멈춰진다. 필자는 재빨리 그 줄에 언제, 어느 날, 몇 시까지 적어 놓곤 했는데 5년여에 걸쳐 번역(지난해에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란 제목으로 출간되었다)하고서야 그 숨은 뜻을 알게 되었다. 또 달라이 라마는 스승의 은혜를 말하다가는 말문이 막힌다. 법문을 자주 듣다 보니 당신은 이 네 가지를 설법하다가 끝내 격앙되어 말씀을 못 하는 것으로 헤아려진다.

티베트 승가(僧家)를 방문할 때 달라이 라마는 법문 이외의 말씀 중에 가끔 이런 말을 한다. “내가 걀와린포체라 해서 잔뜩 공양물을 챙겨 오는데 실은 내가 좋아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수행 잘하는 비구의 모습, 청정하고 내적인 실력을 갖춘 그런 수행자가 찾아오는 것을 좋아하고 기뻐한다. 단정한 승복을 차려입은 비구의 모습이 가장 아름답지 않은가.” 그러면서 끝까지 당신은 우리와 똑같은 부처님의 제자인 한 비구임을 강조한다.

지금 티베트 난민은 세계 곳곳에 퍼져 있다. 유럽인들은 티베트 사람을 동양의 유대인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모인 곳에 먼저 절을 짓고 부처님과 경전을 모시며 스님과 함께한다. 8세기 인도의 고승 파드마삼바바는 티베트에 불교를 전하고 최초로 삼예사원이라는 절을 지은 뒤 승려를 양성했다. 그런데 마지막에 이런 의미심장한 유언을 남겼다. “쇠로 된 새가 하늘을 날고, 바퀴 달린 말이 땅을 달릴 때, 너희 티베트족은 세상에 개미 떼처럼 흩어지리라. 하여 법(다르마)은 붉은족에 전해지리라.” 정말 티베트의 미래를 어찌 알고 이런 표현을 했는지 혀를 내두를 정도다. 붉은족은 서양 백인을 말한다. 그들의 얼굴이 희다고는 하지만 원래 빨간 얼굴의 종족이었다는 것이다.

달라이 라마는 “제가 이 지구촌 곳곳에 불법의 씨앗을 뿌려 놓은 것 같습니다. 이 씨앗이 어떻게 싹이 터서 어떤 모습으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지는 제가 죽고 난 뒤의 일이겠지요”라고 말한다. 하긴 한 사상체계가 뿌리를 내리는 데는 300년 정도가 걸린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유럽에서 불교는 승가 위주의 모습이 아닌 재가(在家)자 중심의 공동체로 계승 발전하리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지금 인도에서 공부하고 있는 유럽 사람들의 진지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요사이는 이스라엘에서 온 출가승이 의외로 많다. 부다가야, 룸비니, 사르나트 등 불교 성지의 나무 밑에 앉아 명상하는 이는 거의 유럽에서 온 불자들이다. 우리나라나 동양권 성지순례객은 예경(禮敬)으로 절하고 염불하는 의식을 하면서 부산하지만, 서양 순례객은 끝없이 안으로 참배하고 명상하는 차분한 성지순례를 한다. 미래 서양 불교의 싹을 보는 듯해 희망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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