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달라이 라마]<2>세계평화의 큰 가르침

  • 입력 2006년 4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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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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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한국에 가면 ‘그렇게 오랫동안 티베트 불교에서 뭘 배웠는가’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그 질문의 이면에는 티베트 불교식 수행 덕분에 몸이 붕붕 뜨고 신통방통한 힘을 보여 주길 바라는 경향이 있다. 나의 대답은 이렇다. “예, 티베트 불교라 해서 특별한 뭐가 있나요. 똑같은 부처님의 가르침인데, 좀 다르다면 티베트의 독특한 지형 기후 풍토에서 오는 외적인 차이라고 봅니다. 제가 정말 여기서 스승 달라이 라마에게서 배웠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큰 자비심이라고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이 같은 단순한 대답에 대부분은 실망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렇다면 내가 배운 달라이 라마의 큰 자비심이란 어떤 것일까? 》

달라이 라마가 1989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시상식이 전 세계에 실황 중계되던 때였다. 필자는 그때 이 지역에 TV가 귀한 터여서 티베트 난민 수용소인 네렌캉이란 강당에서 수많은 스님 신도와 함께 그 광경을 보고 들었다. 정말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눈시울이 절로 뜨거워진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똑같다.

달라이 라마는 시상식 때 상장 메달 기념품을 받고 수상자 연설을 하면서 영어로 이렇게 시작했다. “오늘 저에게 주어진 이 값진 상은 사실 저보다는 티베트 내에서 고생하며, 혹은 세계 각지에 망명 나와 힘들게 살고 있는 티베트 사람들이 받아야 할 상을 제가 대표로 받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양해 바랍니다. 지금 이 상황에서 티베트 사람들이 영어로는 제 말을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에 양해를 구하건대 제가 우리 티베트 말로 잠깐 몇 마디만 하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그는 한참 후 티베트 말로 이렇게 말했다. “우리 조국 티베트에 계시고 또 세계 각처에 나와 있는 티베트 사람들에게 말씀드립니다. 얼마나 고생이 많습니까. 특히 중국에 점령되어 힘들게 살아가는 티베트 사람들에게 말하겠습니다. 비록 내가 멀리 망명 나와 있지만, 힘이 드는 삶에서도 중요한 것은 불법(佛法)입니다. 부처님의 법을 믿고 그 법에 따라 산다면 내가 있고 없고와는 상관없습니다. 특히 중국 사람들을 미워하지 마시고 어떤 물리적 가해로 피해를 주지 마시기를 당부드립니다. 중국 사람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입니다. 끝까지 자비심으로 인욕하면서 먼 훗날 다시 모여 함께 살 때까지 부처님에게 근거를 둔 법에 따른 삶을 살아가기를 거듭 당부합니다.”

이 말을 할 때 얼굴이 불그레하게 상기되었던 그의 모습이 기억난다. 그러고는 영어로 미리 준비한 연설문을 읽어 나갔고, 이런 기도문으로 끝을 맺었다. “허공계가 다하고 단 한 명의 중생이 남아 있는 한 저는 이 세상에 머물면서 중생의 고통을 없애는 자로 남겠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기도문은 샨티데바의 ‘입보리행론’ 10장 55절에 나오는 게송이었다.

1989년 10월 노벨 평화상 상장과 메달을 받고 환히 웃는 달라이 라마. 그는 망명기간 동안 티베트를 독립시키기 위해 평화적으로 투쟁해 왔을 뿐 아니라 우주와 인류 및 생물에 대한 존엄성을 주창해 온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결정됐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나라를 빼앗긴 티베트의 어른인 수장으로서 모든 것을 빼앗아 간 적이고 원수인 상대에게 이런 자세를 가질 수 있는 것일까.

달라이 라마가 티베트에서 인도로 망명 나온 지 1년이 지난 1960년의 일이다. 티베트 전역에서 독립을 위해 반(反)중국 민간부대가 설립되어 각처에서 중국군에 피해를 줄 때였다. 그중 용감하고 힘이 있는 단체가 캄파 유격대였다. 그들은 네팔 접경지대인 히말라야 산중에 근거를 두고 중국군을 괴롭혔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중국 정부는 네팔 정부에 티베트 게릴라들이 네팔 지역에 머물지 못하도록 압력을 가했다. 그러나 그 높고 넓은 히말라야 지역의 어디를 가서 뭘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인가. 결국 네팔 정부는 히말라야 산속에 흩어져 있는 게릴라들을 해산해 달라고 티베트 망명정부로 연락했다.

달라이 라마는 곧 육성을 녹음해 네팔 산속에 있는 유격대에 인편으로 전했다. 산속의 전 부대원은 자신들의 희망인 달라이 라마가 드디어 말씀을 준다고 용기백배해 다 모였다. 대장 이하 모든 티베트 게릴라는 녹음기에 삼배의 정례를 올린 뒤 긴장한 채로 녹음기에 집중했다.

그러나 녹음기에서 흘러나온 말씀은 이랬다. “나라를 위하여 고생하고 싸우는 것은 훌륭하지만 사람을 죽이는 것은 법이 아닙니다. 부처님께서는 불살생(不殺生)을 첫째의 덕목으로 가르쳤습니다. 내가 그대들의 뜻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부처님의 법을 펴는 부처의 한 제자로서 명합니다. 여러분이 나를 믿는다면 법을 따라야 합니다. 모두 총을 버리고 나를 따라 인도로 망명해 오든지, 아니면 각자의 고향으로 돌아가십시오.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원합니다. 중국 사람도 우리와 똑같아서 불행을 원치 않습니다. 남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바르지 않습니다….”

달라이 라마의 말이 이어지자 이쪽저쪽에서 훌쩍거리기 시작하더니 모든 사람이 대성통곡하는 자리로 변해 버렸다.

말씀이 끝나고 사태가 수습되었을 때 부대의 대장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자, 우리 모두는 부처님과 같은 존자님 달라이 라마의 말씀을 따라야 한다. 하지만 군대의 대장으로서 총을 버린다는 것은 적에게 굴복하는 것이니 나는 이곳에서 대표로 자결을 하겠다.” 그러고는 부대를 해산한 뒤 끝내 독배를 마시고 생을 마쳤다. 이후로 티베트 내의 모든 유격부대는 해체되었다.

달라이 라마의 이런 실제적인 행동과 가르침에서 필자는 무엇보다도 큰 자비심을 보고 이를 배우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 누가 자기의 적에게 우리가 죽을지언정 그들에게 폭력을 쓰지 말라고 가르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이곳의 열악한 환경에 가끔 화가 나고 실질적인 불이익을 당할 때 불쾌하고 상대방을 원망할 때가 많다.

그러나 정말 바르게 잘 수행해 어떤 불편한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달라이 라마는 세계 평화를 이루기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은 강대국들이 무기를 감축하고 핵을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내적인 적, 즉 분노를 다스리고 마음을 선(善)과 진리 쪽으로 길들이는 것이라고 늘 말한다. 최근 중국에서는 달라이 라마가 정치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하고 순수한 종교 및 문화의 자유에 한해서라면 티베트에 들어와도 좋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고 한다. 필자의 생각이지만 중국도 물질적으로 비대해지면서 필요한 것이 정신적 뒷받침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에 국한된 사람이 아니다. 중국에도 도움이 된다. 중국은 옛날 천하를 지배한 원나라의 시작과 끝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왜 그 큰 나라가 몇 대를 못 가서 자멸했던가. 그것은 무엇보다 그 큰 나라를 지탱해 줄 정신적 기반이 없었기 때문이다.

2000년 1월 중국의 최고 실력자 장쩌민은 중국의 종교가 불교임을 만방에 선언했다. 중국 불교 당국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전에 중국 불교도를 6억 명까지 늘리고 훗날 세계 불교의 중심 국가로 자처할 계획을 수립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참 아이로니컬하다. 문화혁명이라고 하면서 절이고 뭐고 다 때려 부수는 부끄러운 행동을 할 때는 언제고. 하긴 중국의 긴 역사 속에 이 문화혁명의 짧은 10년은 영원히 씻지 못할 수치임이 분명하다. 그때의 최대 피해자는 물론 티베트 불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를 초토화한 중국인에 대해서도 똑같이 좋아하고 관심을 갖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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