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흐르는 한자]<574>三 寸 舌(삼촌설)

  • 입력 2003년 5월 25일 17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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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 寸 舌(삼촌설)

舌-혀 설 說-달랠 세 筍-죽순 순

縱-세로 종 諫-간할 간 靈-영험 영

중국의 戰國時代(전국시대)라면 遊說(유세)의 기풍이 천하를 휩쓸던 시대였다. 내로라 하는 說客(세객)들이 雨後竹筍(우후죽순)처럼 나타나 ‘나를 써야 天下를 차지할 수 있다’고 외치면서 中原(중원)을 누비고 다녔다.

張儀(장의)는 蘇秦(소진)과 함께 縱橫家(종횡가)의 雙璧(쌍벽)으로 불린다. 각기 連橫(연횡)과 合縱(합종)이라는 상반된 외교술을 주장했지만 두 사람은 鬼谷子(귀곡자)의 제자다. 이를테면 同門受學(동문수학) 관계였던 셈이다.

그중 張儀(장의)는 魏(위)나라 사람이었다. 한 번은 楚(초)의 宰相(재상)과 술을 마시게 되었는데 宰相의 璧玉(벽옥)이 없어졌다. 다들 가난뱅이 張儀를 의심하고는 초주검이 되도록 두들겼다. 기절해 있는데 아내가 찾아왔다. 정신을 차린 張儀가 입을 크게 벌리고 물었다.

“내 혀가 있는지 보시오.”

그 길로 괴나리봇짐 하나 달랑 메고 秦(진)나라로 가 惠王(혜왕)을 만나 예의 그 현란한 혀놀림으로 일약 宰相(재상)의 자리에 올라 천하를 주무르게 된다. 蘇秦이 6국을 다니면서 주창한 合縱策(합종책)을 깨고 連橫策(연횡책)을 성공시킴으로써 100년 뒤 秦始皇(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하는데 기틀을 쌓았다.

張儀를 비롯한 說客들이 가장 중시했던 것은 세 치 혀였다. 즉 세 치 혀를 얼마나 잘 놀려 상대방을 설득하느냐에 따라 遊說의 성패가 갈라지는 것이다. 衛(위)의 商앙(상앙)은 秦의 孝公(효공)을 찾아 세 치 혀로 하룻밤 사이에 孝公의 얼을 빼놓았다. 이렇게 하여 신임을 얻은 다음 秦의 국법을 송두리째 바꾸는 소위 ‘變法’(변법)을 시행함으로서 秦이 강국으로 도약하는 발판을 만들었다. ‘三寸之舌, 强于百萬之師’(삼촌지설, 강우백만지사-세 치 혀는 백만대군보다도 강하다). 司馬遷(사마천)의 말이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 세 치 혀를 잘 놀려 榮達(영달)을 누린 이가 있었는가 하면 잘못 놀려 죽음을 당한 예도 많다. 殷(은)의 충신 比干(비간)은 폭군 紂王(주왕)에게 直諫(직간)하다 심장에 구멍이 7개나 뚫려야 했으며 司馬遷(사마천)은 친구 李陵(이릉)을 변호하다 漢武帝(한무제)에 의해 宮刑(궁형)의 치욕을 맛보아야 했다.

잘 쓰면 靈藥(영약), 못 쓰면 死藥(사약)이 되는 것이 혀다. 혀를 잘못 놀려 당하는 화를 舌禍(설화)라 하거니와 愼言(신언·말은 신중히 해야 함)이 중요함을 알 수 있다.

鄭 錫 元 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 중국문화 sw47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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