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흐르는 한자]<553>植 木 日(식목일)

  • 입력 2003년 4월 3일 18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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植 木 日(식목일)

植-심을 식 戶-지게문 호 需-쓸 수

棺-널 관 綠-푸를 록 童-아이 동

漢字에는 여닫는 문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문짝이 두 개면 門(즉 大門), 한 쪽이면 戶(호)라고 한다. 사실 ‘門’자는 좌우 두 개의 戶를 합친 상형문이다. 또 싸리나무나, 참나무로 엮으면 扉(비), 갈대면 扇(선)이라고 했다. 우리말로 ‘사립문’인 셈이다.

이 중 大門이라면 쉽게 關(관·빗장)을 지를 수 있지만 한 쪽 뿐인 戶는 별도로 문 옆에 나무를 세워야 했는데 이것을 ‘植’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植은 본디 戶를 빗장지르기 위해 사용했던 ‘直木’(곧은 나무)이었음을 알 수 있다. 후에 ‘심다·세우다’는 뜻도 가지게 된다.

옛날 중국의 春秋戰國(춘추전국)시대 500년은 전국이 온통 전쟁의 도가니로 변하여 그 참혹과 혼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이런 와중에도 재미를 보는 업종이 있었으니 軍需(군수업자)와 葬儀(장의)업자였음은 이미 설명한 바 있다.

특히 葬儀業者의 경우, ‘네가 죽어야 내가 사는’ 기막힌 업종 특성 때문에 초호황을 누렸는데 그러다 보니 뜻하지 않은 문제점도 나타났다. 棺(관)의 수요가 폭증하여 나무를 마구 잘라내는 바람에 산이 온통 민둥산으로 변했던 것이다. 보다 못한 墨子(묵자)는 棺의 두께를 줄이자며 ‘節葬論’(절장론)을 주장하였다.

지금은 전국의 산이 온통 짙푸르게 우거졌지만 30년 전까지만 해도 벌거벗은 민둥산이었다. 나무를 연료로 사용했던 데다 6·25 전쟁까지 치루는 바람에 전국의 산은 시뻘건 흙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1961년 5·16 군사혁명을 통해 집권한 제3공화국은 治山治水(치산치수)의 첫 과업으로 山林綠化(산림녹화)를 擧國的(거국적)으로 추진하였다. 그 결과 당시 어른이면 누구나 沙防(사방)사업에 참여했는데 하루 일하면 미국 원조 밀가루 한 사발씩을 주었다.

학생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나무를 심자’는 내용의 童謠(동요)를 열심히 불렀으며 특히 시골에 사는 학생의 경우, 풀씨를 훑거나 아카시아 씨앗을 모아 학교에 가져갔는가 하면 어떤 때는 수업대신 송충이를 잡기 위해 산을 오른 적도 많았다. 40대 이상의 중년이면 누구나 아련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나무를 심자고 제정한 날이 4월 5일 植木日이다. 매년 淸明節(청명절)과 겹치는 이 날은 따뜻하여 나무를 심기에 제격이다. 내일이 바로 그 날이다.

“산에 산에 산에다 나무를 심자.”

매년 植木日이면 불렀던 노래다.

鄭 錫 元 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sw47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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