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흐르는 한자]難 兄 難 弟(난형난제)

  • 입력 2003년 1월 7일 18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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難-어려울 난 綱-벼리 강 幼-어릴 유

曲-굽을 곡 逸-숨을 일 衆-무리 중

三綱五倫(삼강오륜)의 하나에 ‘長幼有序’(장유유서)가 있다. ‘어른과 아이간에는 차례가 있어야 한다’는 뜻인데 그 ‘차례’라고 하는 것이 심히 고약하다. 서양에서 말하는 ‘順序’(순서)와는 달리 일방적이면서도 비민주적인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나는 長幼有序 대신 長幼有次(어른과 아이간에는 차별이 있어야 한다)로 바꿔 부른다.

‘형보다 나은 동생 없다’는 말도 長幼有序 관념이 뿌리깊게 박혀 있는 우리나라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늘 年長者(연장자)의 행위가 정당화되다 보니 어쩌다 형제간에 싸우기라도 하면 야단을 맞는 것은 동생 쪽이다. 是非曲直(시비곡직)이야 어떻든 간에 아랫사람은 무조건 윗사람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윤리관 때문이다. 그런데 형과 동생의 優劣(우열)을 가리기 힘들 때가 있다. 難兄難弟가 그것이다. 行列(항렬)상 엄연히 위아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難兄難弟라고 하는 데에는 유래가 있다.

南朝(남조) 宋(송)의 劉義慶(유의경·403∼444)이 쓴 世說新語(세설신어)는 東漢(동한)부터 東晉(동진)까지의 400년간에 있었던 名士(명사)들의 逸話(일화)나 德行(덕행), 文學(문학) 등을 모은 책이다. 본서의 德行편에 보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陳元方(진원방)의 아들 長文(장문)과 陳季方(진계방)의 아들 孝先(효선)은 사촌간이다. 어렸을 때 하루는 서로 자기 아버지가 더 똑똑하다고 우기면서 싸웠다. 그러나 결론이 나지 않자 할아버지 陳太丘(진태구)에게 여쭈어 보았다.

太丘는 난감했다. 우선 사촌간에 다투는 것이 못마땅했을 뿐만 아니라 둘 다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元方으로 말할 것 같으면 재주가 뛰어나 타의 追從(추종)을 불허하고 季方 역시 남의 밑에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出衆(출중)했던 것이다. 그래서 고민 끝에 이렇게 말했다.

“元方도 형 노릇하기가 곤란하지만 季方도 동생 노릇하기에는 곤란하다.”(元方難爲兄, 季方難爲弟)

그것은 元方도 그토록 훌륭한 동생의 형 노릇하기가 쉽지 않고 季方도 훌륭한 형의 동생 노릇하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곧 누가 더 낫다고 꼬집어 말하기 곤란하다는 뜻이 아닐까.

難兄難弟는 형제간에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때 하는 말이다. 伯仲之勢(백중지세)와 비슷하다 하겠다. 이제 형제간에 싸우면 무조건 동생을 나무랄 것이 아니라 ‘難兄難弟구먼!‘한 마디면 매우 훌륭한 판결이 될 것이다.

鄭 錫 元 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sw47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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