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기자의 무비홀릭]‘도쿄타워’의 사랑

  • 입력 2005년 11월 17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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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유부녀는 아름답다=35세 가정주부 기미코(데라지마 시노부). 그녀는 남편이 출근한 뒤 세탁기를 돌린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세탁통을 바라보던 그녀는 참을 수 없는 욕망과 궁금증이 치밀어 고지(마쓰모토 준)에게 전화를 건다. 유부녀, 특히 주부는 자신의 일상이 비루하다고 느낄 때 금지된 사랑을 향한 강렬한 욕구를 느낀다. 기미코가 새벽녘 부스스한 머리를 한 채 쓰레기봉투를 버리려고 나왔다가 집 밖에서 밤새 기다리던 고지와 마주치는 장면(사진1)에선 차라리 그녀의 성 욕망이 핵폭발한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한 기미코는 쓰레기봉투를 털썩 땅에 떨어뜨리지만 곧바로 둘은 격렬한 키스를 나눈다. 아, 쓰레기봉투를 든 유부녀처럼 섹시한 대상이 세상에 또 있을까. 자신의 생활을 들켜버린 유부녀는 마음속에 남겨뒀던 작은 문마저 열게 마련이다.

‘도쿄 타워’에는 유부녀의 등이 빛난다. 유부녀의 등에는 끝없는 집착과 재미에 대한 갈망, 그리고 자기를 송두리째 버리고 싶은 모험가 정신이 숨어 있다. 21세 의대생 도오루(오카다 준이치)와 사랑을 나누는 스무 살 연상의 시후미(구로키 히토미). 비 내리는 창밖에서 바라본 그녀의 등은 스산하면서도 강렬하다. 특히 등을 보이며 시후미가 하는 한마디는 연하남의 마음에 또다시 불을 댕긴다. “이만 갈게. 나 저녁밥 해야 돼.” 고지가 고등학교 시절 같은 반 친구의 어머니와 금지된 사랑을 나누는 장면(사진2)에서도 유부녀의 무표정한 등은 복잡 미묘한 감정으로 다가온다.

②꽃미남은 아름답다= 꽃미남은 팬시상품 가게에서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는 예쁜 종이인형처럼 ‘대상화’될 때 유부녀의 소유욕을 더욱 부채질하는 법. 주차요원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기미코와 처음 마주치게 된 고지(사진3). 끊어질듯 잘록한 허리, 꿈같은 눈빛, 멋지고 원숙한 체하려고 기를 쓰는 웃음이 오히려 깨물어 죽이고 싶을 만큼 귀엽다.

특히 울고 있는 꽃미남은 원숙한 연상녀의 모성애를 자극하는 최고의 ‘기획 상품’이다. 시후미의 바닷가 별장으로 함께 밀월여행을 간 도오루. 시후미의 무릎을 베고 누워 저 밤하늘의 달을 바라보며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던 그(사진4)는 유부녀의 마음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결정적인 멘트를 날린다. “달은 아침이 되면 사라져요. (당신처럼) 아름다운 건 언젠가 사라져 버려….” 도오루는 이것도 모자라 파티에 참석 중인 시후미에게 달려간다. 남편이 보는 앞에서 시후미의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은 도오루는 엉엉 울면서 “죽을 만큼 보고 싶었어! 난 장난감이 아냐. 이것만큼은 기억해줘요”하고 외친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추신=이 칼럼은 절대로 ‘불륜’을 미화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지 않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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