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냐, 진화냐.’ 토론하기에 좋은 주제다. 믿음과 과학이 ‘문명 충돌’을 일으키며 인식의 지평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토론을 하게 되면 기대한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한쪽은 신성한 존재를 내세우며 논리를 연역적으로 펴나가기 일쑤다. 신이라는 보름달 앞에 과학이라는 횃불은 보잘 것 없는 것이 되고 만다. 이에 맞서는 쪽도 진화에 관련한 기초 상식에 기반을 두기 쉬워 상대방의 허점을 공략하지 못한다. 상대방이 그저 ‘꼴통’으로만 보일 뿐이다. 그러다 보니 인간의 조상이 원숭이냐 아니냐를 놓고 말싸움을 벌이다 토론이 흐지부지되기 십상이다.
토론이나 논쟁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믿음을 논리로, 상식을 지식으로 대체해야 한다. 진화를 주제로 한 논쟁에서 논리의 칼을 벼리려면 데이비드 버니의 ‘진화를 잡아라!’를 숫돌로 삼을 필요가 있다. 진화에 관한 모든 것을 요령껏 정리해낸 책이어서 그렇다. 다윈의 진화론을 핵으로 삼아 그 전의 과학사와 이후의 과학적 발견을 개념별로 두 쪽에 걸쳐 설명하고 있다. ‘진화에 관한 백과사전’이라 할 만하다. 만족스럽다고는 할 수 없으나 유머 있는 삽화도 있다. 자칫 지루할 수 있는 독서에 즐거움을 안겨준다.
이 책은 크게 보면 네 가지 키워드로 구성되어 있다. 진화와 유전과 DNA, 그리고 기원이다. 다윈은 변이와 자연선택을 내세워 진화론을 주장했다. 그러나 변이가 일어나는 원인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지 못했다. 유전과 DNA는 다윈의 진화론을 뒷받침하는 놀랄 만한 과학적 발견이다. 이로써 진화의 메커니즘이 밝혀진 것이다. 책의 뒤편은 진화론적 입장에서 생명의 기원을 짚어보고 있다.
생명의 진화를 언어의 특성과 비교한 대목은 눈여겨 볼 만하다. 일찍이 다윈도 진화를 언어에 빗대어 설명한 적이 있다. 흔적기관이 한 낱말에서 더 이상 발음은 되지 않으면서 여전히 남아 있는 철자와 같다고 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지만 그 철자가 낱말의 발달 과정을 일러주기 때문이다. 언어학자들에 따르면 인도-유럽어족의 언어들은 대략 7000년 전 남유럽이나 중앙아시아에서 쓰였을 원형언어에서 발달했다고 한다. 사람과 침팬지가 600만년 전 같은 조상에서 갈라져 나왔다는 주장을 생각하면 된다. 새로운 낱말이나 오래된 낱말의 변형은 어느 때나 모든 언어에 나타나며 그것이 유용하다고 판단되면 신속하게 확산되곤 한다. 돌연변이를 떠올리면 된다. 언어 역시 지질학적 고립이 다양성을 일으킨다. 한 고지대에는 100여개의 언어가 있다고 한다. 이 지역에 새로운 언어가 들어오면 토박이말과 ‘생존경쟁’을 벌이게 된다.
창조냐 진화냐를 놓고 ‘진영’이 나뉠 수는 있다. 그러나 유전공학의 출현으로 생명의 진화를 인간이 주도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을 놓고는 머리를 맞대고 함께 고민해야 한다. ‘자연선택’의 굴레에서 벗어날 인류의 앞날이 유토피아일 것인가, 디스토피아일 것인가. 우리의 참여와 비판이 그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이권우 도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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