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고 재미있게 핵심 내용을 풀어썼으며 논술에도 도움이 된다.” 청소년 책을 선전할 때면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문구다. 그러나 이 말은 알고 속는 거짓말에 가깝다. 논술이란 높은 수준의 독해력과 논증 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이다. 논술을 대비한답시고 ‘쉽고 재미있는 책’만 읽은 학생들은 논제의 까다로운 제시문을 보면 당황하기 일쑤다.
거꾸로 어려운 고전 읽기 위주로 논술 공부를 시키는 입시학원들도 꽤 많다. 하지만 가뜩이나 학업 부담이 많은 학생들이 충분히 시간을 두고 곱씹어야 하는 고전을 제대로 읽을 리 없다.
이런 현실에서 이 책은 수험생들이 반길 만한 책이다. 책의 원제는 ‘네가 알아야 할 것들(Das musst du wissen)’. 제목 그대로 청소년이 꼭 알아야 할 내용을 ‘가볍고 흥미롭게’라는 당의(糖衣)를 씌우지 않고도 소화하기 좋게 담아냈다. 청소년 독자의 특성을 섬세하게 배려한 결과다.
먼저 각 꼭지의 길이가 한 장을 넘지 않는 점이 인상적이다. 학생들의 ‘독서 지구력’을 배려한 결과다. 책은 ‘헬레니즘’ ‘열과 핵에너지’ 등 만만치 않은 항목들을 다루고 있지만, 분량이 짧기 때문에 학생들은 대부분 내용을 끝까지 읽어 낼 수 있다.
궁금증을 풀어주는 동시에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편집 구성도 눈여겨 볼 만하다. 예컨대, 밀도에 대한 수업을 듣다가 아르키메데스의 실험이 궁금해졌다고 하자. 이 경우 이 책은 작은 백과사전 역할을 한다. 책 뒤의 상세한 색인을 보면 해당 내용을 담은 꼭지를 쉽게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욕조의 물은 꼭 몸 부피만큼 넘친다는 사실에 착안해 아르키메데스가 왕관에 섞인 금 함량을 밝혀냈다는 사실을 읽고 나면 아이들은 페이지 한구석에서 궁금증을 일으키는 또 다른 질문을 발견하게 된다. “잠수함은 어떻게 뜨고 가라앉을까?” 새로 얻은 지식이 다른 깨달음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구도다.
이 책에는 번역서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나는 면도 있다. ‘독일의 수상들’ ‘하인리히 만’ 등 독일인들의 관심사를 독일의 논리로 서술하고 있는 부분들이 그렇다. 하지만 영어권 번역서들이 대세를 장악한 우리 청소년 출판 시장에서 이 점은 오히려 ‘단점 같은 장점’이다. 노동시장 정책의 목표를 ‘가능한 한 많은 이들에게 정규직을 보장하는 것’이라고 보는 이 책의 해설은 자유주의가 우세한 영미권 시각에서라면 좀처럼 나오기 힘든 것이다. 독자들은 독일 청소년들을 위해 쓰인 이 교양서를 통해 ‘유럽의 사고방식’에 대한 이해를 덤으로 얻을 수 있겠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학교도서관 총괄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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