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주말시대]‘태백산맥’ 무대인 전남 벌교

  • 입력 2004년 4월 29일 16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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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박한 남도 사투리와 푸근한 인심이 살아있는 벌교. 수십년의 세월이 이곳만은 비켜간 듯 옛 정취가 곳곳에 살아있는 이곳은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의 무대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1948년 ‘여순 반란사건’을 앞둔 어느 날 새벽, 솜털처럼 하얀 꽃무리를 이루고 있는 갈대밭 풍경으로 막을 연다. 그리고 6·25전쟁을 거쳐 1953년 공비 토벌이 끝나가던 가을 어느 날, 갈대가 누렇게 변해버린 벌교의 포구를 배경으로 막을 내린다.

5년에 걸친 우리 민족의 비극사를 다룬 ‘태백산맥’은 작가가 실제로 거주했던 벌교 구석구석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다행히도 소설 속의 장소들은 옛 모습 그대로 남아있어 관광객들이 둘러볼 수 있다. 이번 주말에는 전남 보성군 벌교읍에서 소설 속 등장인물을 체험해보면 어떨까.》

○ 진트재에서 내려다본 벌교

벌교읍과 순천시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진트재는 ‘태백산맥’ 문학기행의 시발점으로 꼽힌다. 소설에서 벌교지구 계엄사령관으로 부임한 장교 심재모는 진트재에서 내려다본 벌교의 아름다움에 탄성을 자아냈다. 서북쪽으로 반원을 그리며 이어지는 산과 동남쪽으로 길게 펼쳐진 들판과 포구…. 벌교읍의 모습은 참으로 아늑하고 포근한 느낌을 준다.

읍내로 들어가는 구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회정3리가 나온다. 외서댁을 찾아가는 염상구가 팔을 휘젓고 다니던 곳이다. 곱상한 얼굴에 유난히 큰 가슴을 부끄러워했던 외서댁은 저절로 옴쭉거리는 신기한 자궁을 가진 탓에 ‘쫄깃쫄깃한 겨울 꼬막 맛’에 비유되곤 했다.

벌교읍내로 들어서는 길목, 버스터미널 뒤에는 현부잣집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정하섭과 무녀의 딸 소화가 사랑을 키우던 곳이다. 누각 형태로 지은 솟을대문 안으로 들어서면 위엄 있는 대갓집 면모가 드러난다. 안채는 한옥을 기본틀로 하고 곳곳에 일본식을 가미한 색다른 양식을 보인다. 안채 화장실에는 당시 구경조차도 하기 어려웠던 양변기가 놓여있다.

벌교천에는 개천을 가로지르는 부용교(소화다리)가 있다. 여순반란사건, 6·25전쟁 등 현대사의 비극을 거치면서 수많은 희생자를 냈던 곳이다. 1931년 중도방죽을 막으면서 세워진 이 다리는 일제강점기인 소화 6년에 건립됐다 하여 이름이 바뀌기도 했다.

○ 소작민들 애환 들리는 듯

벌교에는 태백산맥의 배경이 된 홍교(위)와 현부잣집이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개펄 밭을 농토로 만들기 위해 바다를 막아 세운 중도방죽. 소설 속 하대치의 아버지 하판석 영감을 비롯해 벌교 소작민들이 등이 휘도록 돌을 져나르며 “이것이 워디 사람이 할 짓인감” 소리를 내뱉었던 가슴 아린 곳이다.

중도방죽을 돌아 나오다 보면 철다리가 보인다. 소설에서는 염상진의 동생 염상구가 벌교 제일의 주먹이었던 땅벌과 ‘기차가 가까이 올 때까지 누가 더 오래 버티나’ 하는 담력 결투를 벌이던 최후의 결전장이다.

소화다리를 지나 오른쪽으로 더 가면 소설에서는 ‘횡갯다리’로 묘사된 홍교가 나온다. 염상진, 하대치 등 빨치산들이 지주들의 집에서 쌀을 빼앗아 소작인들에게 나눠주기 위해 쌓아 놓았던 곳.

홍교는 벌교의 상징이기도 하다. 벌교(筏橋)는 우리말로 뗏목다리를 뜻하는데, 옛날에는 이곳에 뗏목으로 된 다리가 있었다. 이 다리는 비가 조금만 와도 끊어져 단교(斷橋)라고도 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선암사의 초안선사가 1723년(영조 5년)에 돌다리인 홍교를 세웠다.

세 칸으로 이어진 무지개 모양의 홍교는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아치형 석교 가운데 그 규모가 가장 크고 아름다워 보물 제304호로 지정돼 있다.

○ 질박한 삶 묻어나는 꼬막채취

벌교의 명물은 역시 쫄깃한 맛의 꼬막이다. 역 주변 상점앞에 쌓여 있는 꼬막 자루들.

“간간하고 졸깃졸깃하고 알큰하기도 하고, 배릿하기도 한 그 맛은 술안주로도 제격이제.”

소설이 전하는 벌교 꼬막의 맛이다. 이곳 꼬막은 실제로 육질이 탱탱하고 맛이 좋은데다 고단백이면서도 비타민과 칼슘, 철분 함유량이 많아 빈혈 예방과 어린이 발육에 좋다. 벌교에선 꼬막을 으뜸 음식으로 친다. 다른 것은 몰라도 제사상에 꼬막만은 꼭 올라야 한다.

매달 음력 말일에서 다음달 보름 사이, 썰물에 맞춰 장암2리에 가면 꼬막 채취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바닷물이 빠지면 30∼40명의 아낙네들이 개펄 위에 널빤지(폭 50cm, 길이 2m 정도)를 올려놓고 한쪽 다리로 개펄을 차고 나가는데 웬만한 배보다 훨씬 빨라 놀랍다. 허리께까지 물이 차는 바다 한가운데서 꼬막을 잡는데 한번 나가면 4∼5시간 작업한다.

장암리 선창에 가면 꼬막을 직접 살 수 있다. 20kg에 5만∼5만5000원선으로 읍내에서 사는 것보다 훨씬 저렴하다.

출출해지면 읍내 식당에서 꼬막정식을 먹어볼 만하다. 벌교에서는 어떤 메뉴를 주문해도 꼬막으로 된 밑반찬이 나오긴 하지만 꼬막정식에는 삶은 꼬막을 비롯해 꼬막전, 꼬막 초무침, 꼬막 비빔밥 등 꼬막으로 만들 수 있는 모든 요리가 나온다. 1인분 1만5000원.

글=최미선 여행플래너 tigerlion007@hanmail.net

사진=신석교 프리랜서 사진작가 rainstorm4953@hanmail.net

▼주변 행사▼

벌교읍은 태백산맥 무대 복원사업의 하나로 다음달 2일 ‘제1회 태백산맥 무대 가족걷기대회’를 연다. 오전 10시 벌교 제일고 운동장에서 출발, 소화다리를 건너 회정리 돌담교회와 현부잣집을 경유해 일제강점기 벌교읍민들의 한이 서려 있는 중도방죽을 지나 진석마을 앞까지 약 6km를 걷는다.

진석마을 입구에서는 소설 속의 무대 사진전과 참꼬막 까먹기 대회, 가족대항 노래자랑이 열린다. 걷기대회 참가비는 가족당 1만원. 참가 가족에게는 티셔츠를 무료로 나눠준다. 참가신청은 행사당일 현장에서도 가능하다. 벌교읍사무소 061-857-6410

▼1박 2일 떠나볼까▼

1.벌교 도착→진트재→회정3리→현부잣집→부용교→철다리→홍교→숙박

2.썰물 때 갯벌 꼬막 채취 구경→읍내서 꼬막정식(1만5000원) 맛보기→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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