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만나는 시]이세기/빈방에 들어와

  • 입력 2006년 3월 16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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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방에 내가 서 있다

빈방에 들어와

낯선 내가 내 몸을 만진다

쥐의 간만치도 못하고

벌레의 발만치도 못한

누추가 그새 따라와 서 있다

방 안에는

어둠이 내리고

메마른 검은 겨울나무 한 그루

벽에 서 있다

새 한 마리 울지 않고

매미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그새 어두운 것이 스치고 지나갔다

갯바닥이라도 뒤질까

게통배라도 탈까

방 안에 해금이 울었다

―시집 ‘먹염바다’(실천문학사) 중에서

새소리도 없고 매미 울음도 그치니, 빈방에 든 저이 오롯이 혼자이겠네. 적막만한 배경이 다시 있으랴. 어둔 방 우두커니 멈추어 서니 스스로 겨울나무가 되고 해금이 되네. 누추가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지만, 겨울나무가 봄나무로 가는 것을 막기야 하겠나. 삶을 스치어 가는 것들 어두움뿐이라도, 죽은 것은 울지 못하고, 우는 것은 살아 있는 것이니, 빈방에 우는 저 해금도 가슴속 뜨거운 생간이 있음을 알겠네. 살아서, 홀로 우는 먹먹한 울음 한 가지쯤 없다면야. 갈매기도 소금밭에 맨발로 우는데.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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