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만나는 시]공광규,“새싹”

  • 입력 2004년 4월 23일 18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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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싹

- 공광규

겨울을 견딘 씨앗이

한 줌 햇볕을 빌려서 눈을 떴다

아주 작고 시시한 시작

병아리가 밟고 지나도 뭉개질 것 같은

입김에도 화상을 입을 것 같은

도대체 훗날을 기다려

꽃이나 열매를 볼 것 같지 않은

이름이 뭔지도 모르겠고

어떤 꽃이 필지 짐작도 가지 않는

아주 약하고 부드러운 시작.

- 시집 ‘소주병’(실천문학사) 중에서

봄은 날마다 기적을 목격하는 계절이다. 푸릇푸릇한 저 싹도, 울긋불긋한 저 꽃들도 겨우내 꽝꽝 언 냉장고 속에서 꺼낸 것들이지 않은가.

‘입김에도 화상을 입을 것 같은’ 여린 새순들이 딱딱한 나무껍질을 거침없이 뚫고 두 팔을 뾰족이 내민다. 돌멩이를 들추고 올라오는 새싹은 어떤가? 단단한 아스팔트를 거북등처럼 균열시키며 올라오는 쑥대궁들은 어떤가?

화초를 심으려고 베란다에 묵혀 두었던 빈 화분을 보니, 어디서 씨앗이 날아왔는지, 쑥과 망초와 까마중과 고들빼기가 냉큼 자라서 흙이 보이지 않는다. 엊그제는 고들빼기가 노란 꽃봉오리를 한 개 피워 올렸다.

오래도록 쪼그리고 앉아 그 꽃을 들여다보며 중얼거리나니 ‘봄날은 날마다 기적을 목격하는 계절이다’.

반칠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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