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하의 만화세상]주목받는 작가 정연식

  • 입력 2002년 3월 17일 18시 05분


1990년대 후반 만화의 영역이 확대되기 시작했다. 만화를 보고 자란 만화 세대가 성장하면서 만화는 일상적이며 친숙한 표현 매체의 위치를 차지해 갔다. 사람들은 만화를 이용하면 딱딱한 것도 부드러워진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며, 강하고 직선적이며 때론 가부장적 권위를 내비치던 신문 만화도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변화하기 시작했다. 박재동이 보여준 만화적 상상력은 신문 만화의 내포를 풍요롭게 했으며,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여러 젊은 작가들이 보여준 색감과 디자인은 신문 만화의 외연을 확장시켰다. ‘도날드닭’의 이우일이나 ‘광수생각’의 박광수, ‘비빔툰’의 홍승우 등은 모두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작가들이다. 정연식도 마찬가지.

정연식은 만화가나 디자이너가 아닌 작은 광고회사의 감독으로 활동한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고추 CF나 보청기 CF를 찍던 광고회사”였다. 성공한 중앙 무대가 아닌 주변부에서 치열한 삶을 살던 정연식은 한 스포츠신문의 만화공모전에서 당선돼 만화가로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 첫 작품이 ‘또디’다. 작은 강아지 또디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천진한, 이팔육 부부를 주인공으로 일상의 자잘한 에피소드를 선보였다. 초기에는 평범했다. 그러나 연재가 거듭되며 ‘또디’는 처음의 모양에서 벗어나 점차 무명 만화가 ‘이팔육’, 평범한 회사원 ‘천진한’, 내숭덩어리 ‘세유’ 등이 보여주는 소박하며 자질구레한 일상을 펼쳐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차 다른 만화와 구분되는 자신의 모양을 만들었다. 자질구레한 것들에 보이는 작가의 관심은 칸 안에서 빛을 발했다. 주인공들은 강박관념을 걷어내고 자신의 일상을 솔직하게 드러냈다. 그것은 그대로 작가의 일상으로 투여되었다.

2002년 작가는 그동안 자신을 대표한 ‘또디’의 단행본을 묶어낼 계획이다. 그리고 ‘또디’를 넘어서는 새로운 변화를 계획하고 있다. “긴 만화를 준비 중이다. 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 아래서, 광고회사에서 해고당한 주인공이 부인과 함께 시골에 내려가 겪는 이야기다. 제목은 ‘전원교향곡’으로 정했다.” 새롭게 시작될 세밀하며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를 기대해 본다. 그의 작품에 기대를 거는 이유는 그가 자신의 삶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잘못 사용된 저작권을 돌려받기 위해 1인 시위를 마다않는 그런 작가이기 때문이다.

만화평론가 enterani@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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