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드레김-이승재기자의 테마데이트]꿈

  • 입력 2002년 3월 28일 15시 24분


이〓선생님은 20대 초반 ‘비오는 날의 오후 3시’란 영화에 배우로 출연하셨습니다. 한국전쟁을 취재하는 프랑스 종군기자 역할이었죠. 어떻게 프랑스인 역을….

앙〓당시엔 주한 외국인이 드물었죠. 그 땐 제 얼굴이 지금보단 좀 더 아아….

이〓이국적으로요?

앙〓아, 그렇게들 저를 보아주셨나봐요.

이〓선생님은 이목구비 라인도 뚜렷하시고 꿈꾸는 듯한 눈망울도 갖고 계신데, 배우의 꿈을 포기하신 까닭은….

앙〓영화배우를 꿈꾸는 건 젊은 날 스쳐 지나가는 과정이죠? 그러나 저는 시사회장에서 나에게 도취되기 보다는 저 자신을 차갑게 바라보았죠. 우선 얼굴이 포토제닉(photogenic)하지 않다고 판단했죠. ‘저건 나의 세계가 아니야’ 하는 생각도 들었고…. 또 영화 촬영과정은 자기 차례가 올 때까지 다른 신(scene) 촬영을 굉장히 오래 기다려야 하거든요? 그 시간이 지루하고 생산적이지 못했죠. 포기는 빠를수록 좋죠? 장래를 위해서….

이〓영화배우의 꿈은 ‘투명인간이 되어 여탕을 좀더 안정적인 환경에서 살펴보았으면’ 하는 공상이나 비슷한 것 같아요. 한때 품어보는 통과의례적 욕망이란 뜻에서….

앙〓대신 디자이너로서의 꿈은 굉장히 일찍부터 꾸어왔죠. 제가 디자인학원에 다니기 훨씬 전인 스무살 때, 그러니까 나인틴 피프티 파이브(1955년), 저는 판에 박힌 듯한 옷은 입고 싶지 않았죠. 그래서 옷감을 재래시장에서 구해다, 동네에 있는 조그만 소잉(sewing·바느질) 가게에 가서 제가 스케치한 종이를 내밀며 “이렇게 만들어 주세요” 했죠.

(이 무렵 앙드레 김은 과산화수소수로 머리를 노랗게 탈색하고 다니다 아버지에게 큰 야단을 들었다.)

제가 디자인한 옷은 단정한 칼라(옷깃)에다, 버튼이 목부터 죽 내려오지만, 완전히 오픈되지 않도록 배꼽 언저리에서 끝이 났죠. 여성 의상으로 치면 ‘오버블라우스’ 형태였죠. 밖으로 내어입는…. 양옆은 깊게 텄고요. 계절별로 색깔을 달리 해 입고 다녔는데, 사람들이 “그런 거 어디에 가면 사요?” 하고 물었죠. 하지만 더 어렸을 때는 ‘아름답고 환상적인 세계가 가득한 시와 소설을 쓸까’ 하는 꿈을 오랫동안 가졌죠.

이〓자주 꾸시는 꿈은….

앙〓저에겐 어머니가 두 분 계셨어요. 탄생하게 해 주신 어머님과 그분이 돌아가신 후 세 살 때부터 저를 키워주신 어머님. 아기자기한 정은 키워주신 어머니에게 더 들었죠. 제가 스물네살 때 돌아가셨는데요. 그 뒤 1년 동안 꿈에 나타나셨어요. 양팔을 펼치시면서 제게 다가오셨죠. 그러면 저는 그 품에 안겨 어머니를 붙들고 엉엉 울었죠. 깨어나면 베개가 흥건히 젖어 있었어요. 거의 매일….

(앙드레 김의 생모는 그를 임신할 무렵, 바다에서 큰 태양이 솟아올라 자신의 가슴에 ‘턱’하고 안기는 태몽을 꾸었다고 한다.)

이〓저는 요즘 제가 존경하는 직장상사들이 돌아가면서 아내에게 버림받고 이혼당하는, 시리즈성 악몽에 시달립니다만….

앙〓전 안 좋은 꿈을 꾸는 날엔 일어나자마자 눈을 감고 기도하죠. ‘꿈에서 본 것이 현실 세계에서 이루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고…. 전 낭만적이고 동화적인 상상을 자주 하는데요. ‘나의 청춘 마리안느’란 프랑스 영화 속 장면을 상상해요. 굉장히 아름다운 미소년이 등장하는 꿈결같은 산, 언덕 위로 보이는 캐슬(castle·성), 사슴과 다람쥐, 하얀 새가 나를 따르고요. 나무가 우거진 곳, 포레스트(forest·숲)죠? 그 속에 커브가 진 길이 있고요. 한쪽엔 호수와 유럽 스타일의 집….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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