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기자의 현장칼럼]신세대 신감각 에로스타 '하소연'

  • 입력 2002년 5월 9일 14시 38분


하소연씨(20)는 각광받고 있는 신세대 에로배우다. 에로배우로서는 드물게 2만2000여명의 회원이 가입해 있는 팬클럽까지 인터넷 다음 카페에 갖고 있다.

-섹스신을 찍을 땐 어떻게 하죠? 꼭 진짜 같은데….

“우리끼리 쓰는 말로 ‘공사’라는 걸 해요. 남자 배우는 살색 스타킹 짧은 것으로 그 부위를 둘러싸서 묶고 여자 배우는 살색 테이프로 작게 팬티라이너처럼 만들어서 그 부위에 붙이고 한답니다.”

-기분이 안 나는데 기분 나는 것처럼 하는 건가요? 아니면 진짜 섹스는 아니지만 간접적인 페팅 효과 같은 걸로 오르가슴을 느끼는 건가요?

“음…. 반반이라고 볼 수 있죠.”

-느낌이 전달돼 오지 않으면 찍기가 어렵겠네요.

“꼭 그렇지는 않아요. 연기니까요.”

-그렇지만 감독들은 늘 좀 더 리얼한 걸 원할 텐데요.

“그러니까 벗은 연기를 제대로 할 수 없는 배우는 진짜 배우가 아니죠.”

에로영화에서 감독들은 여배우가 흥분했을 때의 눈빛을 잡고 싶어한다. 일단 그런 눈빛을 잡고 나면 다음부터는 어떤 포즈로 어떻게 찍느냐하는 것은 거의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 대신 여배우가 ‘필(feel)’을 느끼지 못하면 촬영은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눈빛은 평소와 똑같은데 입으로만 신음소리 낸다고 감독의 OK컷사인이 떨어지지는 않는다. 그런 경우 40, 50분이면 끝날 수 있는 장면이 4, 5시간까지 가는 때도 있다. 연기를 하다 지친 여배우들은 차라리 직접적으로 ‘필’을 느낄 수 있게 해달라고 감독에게 호소하기도 한다. 남자배우쪽도 마찬가지다. 감독의 OK컷사인이 나지 않아 몇 시간씩 같은 동작을 반복하다 진이 다 빠져 다음 장면을 촬영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남녀가 직접 관계를 하는 포르노영화를 찍는 것이라면 감독이나 배우에게 이런 고민은 필요없다. 에로영화의 어려움은 이렇게 진짜와 가짜 사이의 담벼락 위를 아슬아슬하게 걸어가야 하는 데 있는 것이다.

최근의 에로영화는 리모컨으로 빨리돌리기 버튼을 누르며 ‘주요’ 장면만 골라보다가도 지루해 그만두게 되는 과거의 에로영화와는 많이 달라졌다. 짜임새나 분위기가 외국의 세미포르노처럼 고급스러워졌고 실감도 한층 높아졌다.

하씨는 처음에 자신의 팬클럽이 생긴 것도 알지 못했다.

누군가 그녀에게 팬클럽이 인터넷 다음 카페의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알려왔고 그때 비로소 다음 카페에 들어가보고 뒤늦게 팬클럽이 생긴 것을 알았다. 올 2월 23일 정식 창단식을 가진 이 팬클럽의 현재 가입회원은 2만2000여명. 웬만큼 인기있는 배우나 가수라도 이 정도 숫자의 회원을 확보하는 것은 여간해서 쉽지 않은 일이다. 주로 대학생 연령의 팬들이 많지만 간혹 성인물을 봐서는 안 되는 19세 미만의 중고등학생들도 끼어 있어 골칫거리다. 며칠 전에는 서울 청담동의 전속사 사무실을 나서는데 이 동네에서 자장면 배달하는 소년이 알고 달려와 사인을 해달라고 졸라서 당황하기도 하고 즐겁기도 했다.

하소연은 ‘○○부인’류의 에로배우가 아니다. 에로배우하면 원조 ‘애마부인’ 안소영이나 ‘젖소부인’시리즈의 진도희 같은 이미지를 떠올리는 이들에게 그녀는 에로배우 같지 않은 에로배우다. 하이틴의 풋내가 가시지 않은 듯한 얼굴도 그렇고, 신체부위 중에 유일하게 성형수술을 했다고 하지만 풍만하다고 할 수 없는 가슴도 그렇다.

에로영화계의 새 스타로 떠오른 하소연. 틀에 박힌 육감적 매력이 아닌 귀엽고 발랄한 이미지로 어필한다는 점에서 그의 등장은 에로스타의 세대교체라 할 만하다.

그녀의 가장 큰 매력은 초등학교 시절 육상 단거리선수를 했을 만큼 긴 다리에 있다. 에로영화 속의 그녀는 단단하고 탄력 있는 허벅지 선이 연약해보이는 외모와 대조를 이루며 묘한 느낌을 준다.

그녀는 자신의 얼굴에서 눈과 코가 약간 작다는 데 불만을 갖고 있다. 사실 쌍꺼풀을 좀 더 진하게 해주고 코끝을 살리면 유명 여배우들 못지않게 예쁠 것이라는 생각도 한다. 스폰서로 나서서 성형을 해주겠다는 의사도 있다. 그러나 그럴 경우 자신만의 색깔을 잃어버릴까 염려하고 있다.

그녀는 지금 대학 연극영화과에 들어가기 위해 한창 공부에 열중하고 있다. “에로배우 잘 하면 되지 꼭 대학 연극영화과에 가야 하느냐”고 묻자 그녀는 “더 훌륭한 에로배우가 되고 싶은 마음도 있고, 또 에로배우로만 남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고 해서”라고 대답했다.

그녀는 2년 전 경기 수원의 한 여상을 졸업한 뒤 에로배우로 활동하고 있는 친구를 따라 촬영장에 구경갔다가 호기심이 발동해 에로배우의 길에 들어섰다. 이 업계에서 1년이란 시간은 짧지 않은 기간이다. 에로배우들의 수명은 평균 5, 6개월. 대개 이 정도의 기간에 여러 제작사를 돌아다니면서 가능한 한 많은 영화를 찍고 사라져버리는 것이 이곳의 생리다.

에로비디오 한 편을 찍는 데 걸리는 시간은 3박4일이나 2박3일. 최근에는 제작여건이 훨씬 악화돼 1박2일 만에 찍는 경우도 흔하다. 그러나 그녀는 최신작인 ‘테마 오브 러브’ ‘언톨드 스토리’를 비롯해 지금까지 모두 9편의 에로비디오를 찍었을 뿐이다. 한 달에 한 편꼴도 채 되지 않는 셈이다.

에로배우의 수명이 짧은 것은 지나친 겹치기 출연으로 선도(鮮度)를 유지하지 못하는 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곳은 유혹이 많고 자기절제가 쉽지 않은 곳이다. 촬영 중에 남자배우와 눈이 맞아 바깥에서 따로 만나거나, 주변 사람들을 따라 나이트클럽 등을 전전하다보면 마약과 같은 범죄의 유혹에 빠지거나 술살이 쪄서 연기생활을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실제 그녀와 같은 전속사에 속한 꽤 알려진 한 에로배우는 작년 마약복용혐의로 구속이 됐다가 풀려나기도 했다.

주변에서 이런 모습을 보아온 그녀는 자신을 관리하는 데 보기 드물게 철저하다.

“촬영일정이 없으면 오전 6시에 일어나서 숙소 근처인 압구정동 한양아파트 뒤의 한강변을 따라 약 5㎞를 뜁니다. 그리고는 사우나를 하고 오전에 혼자서 공부를 하죠. 오후에는 경락마사지를 받거나 선탠을 하고 저녁에는 아는 여대생 언니로부터 과외를 받습니다. 상고를 다녔기 때문에 수능공부를 해본 적이 없어요. 하루에 두 과목씩 전 과목을 배우는데 수학이 제일 어렵네요. 잠자리에는 밤 12시쯤에 듭니다.”

영화에서 연기의 시작은 연극에서 연기의 시작과는 다르다. 그건 액션이나 에로장면을 실감나게 찍을 수 있는 능력에서 출발하는 것인지 모른다. 문학 연극 사진 영화 등을 같이 놓고 비교할 때 영화는 속도감을 표현하는 액션물이나 관음증을 충족시키는 에로물에 가장 적합한 매체다. 현대 사회에서 영화의 성공은 바로 영화가 갖고 있는 이러한 장점을 극대화한데 있다.

하씨는 최근 들어 일반 영화에도 꽤 비중 있는 조연으로 출연해달라는 섭외를 받고 있지만 거절하고 있다.

“솔직히 말해서 아직은 연기력이 안 되고요. 올해는 전속사에서 한 달에 한두 편씩 에로영화 찍는 것 말고는 공부에 전념할 거예요. 에로배우 중에도 대학에 가서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노랑머리’ ‘썸머타임’ ‘결혼은 미친 짓이다’ 같은 영화들 보니까 에로영화 흉내낸 장면이 많네요. 저라면 훨씬 관능적이고 실감 있는 연기를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요.”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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