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북스]서양인들이 본 조선 '신기한 나라'

  • 입력 2002년 3월 1일 17시 49분


‘파란 눈’의 서양인 눈에 비친 19세기 말 조선 그리고 조선인은 어떤 존재였을까? 야만스러운 동양인이었을까 아니면 전혀 새로운 이방인이었을까. 서양 사람들은 서민 대부분이 입고 있는 흰 옷과 유리창 대신 사용한 한지 등 조선인들의 풍속에 대해 수많은 ‘물음표’를 던지며 신비의 대상으로 여겼다.

최근 서양인의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본 ‘조선의 풍경’을 담은 책들이 속속 출간되고 있다. ‘내 기억 속의 조선, 조선사람들’(퍼시벌 로웰 지음·예담)을 비롯 ‘이방인이 본 조선 다시 읽기’(신복룡 지음·풀빛) ‘조선 기행’(샤를 바라, 샤이에 롱 지음·눈빛) ‘가련하고 정다운 나라, 조선’(조르주 뒤크로 지음·눈빛) 등이 그것.

“조선에 ‘여인숙’이 없는 이유는 중류층이 없기 때문이며, 야간통행이 법으로 금지됐지만 ‘가짜 통행증’을 만들거나 ‘맹인’ 행세를 하면 자유롭게 다닐 수 있다?”

‘내 기억 속의 조선…’에 나오는 얘기다. 이 책은 1883년 12월 고종황제의 초청을 받아 수교 사절단과 함께 조선을 방문한 미국의 유명한 천문학자였던 저자의 ‘유람기’다. 1983년 로웰의 기행문을 발견, 번역까지 하게 된 천문학자인 조경철 박사는 “외국인의 시각에서 조선 말기의 정치 경제 사회 지리 등 문화 전반을 다룬 가장 오랜 글이자 세밀한 기행문”이라고 소개했다.

로웰에게 조선은 ‘신선의 나라’이자 ‘고요한 아침의 나라’였다. 날마다 태양이 평화롭고 아름답게 떠올라 지상의 산과 들을 골고루 비추며 동화 속 궁전처럼 거의 모든 것이 몇세기 전 그대로 간직된 곳이었다. 그는 ‘파란 섬’같은 부산항에 도착해 ‘초가지붕’이 숲처럼 펼쳐진 제물포, ‘거대한 성벽’으로 둘러싸인 서울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묘사한다. 마땅한 교통수단이 없는 관계로 부산에서 제물포까지 배를 타고 36시간을 보내고, 제물포에서 서울까지 가마를 타고 하루를 꼬박 지새기도 한다.

빛바랜 흑백 사진과 함께 당시 조선 사람들에 대한 묘사도 흥미롭다. “긴 머리를 땋아 댕기로 묶은 소년들이 즐비해 소녀로 착각할 정도”라거나 “육체적으로 존재하지만 도덕적 사회적으로 거의 무(無)에 가까운 여성과 일상의 수천가지 일을 돌보는 아버지”에 놀라워한다. 고종 황제의 첫인상을 “타인의 마음을 끄는 매력적인 웃음을 가진 인물”로 묘사한다.

‘내 기억 속의 조선…’과 비교해 읽어볼 만한 책도 있다. ‘조선 기행’은 프랑스의 여행가와 미국의 한성 주재 총영사가 낯선 땅을 돌아다니며 막 문호를 열고자하는 나라의 백성을 풋풋하게 바라본다.

‘가련하고 정다운 나라, 조선’의 경우 세계 열강들의 이해관계와 지배, 소유라는 관점에서 1901년 조선을 접근한다. 특히 조선 군대가 유럽식 의상을 입고, 양반들이 서구 은제품으로 차를 마시는 사진을 통해 조상대대로 내려오는 전통이 무너져내리는 순간을 보여준다.

▼서양인이 바라본 조선과 관련해 읽을만한 책들▼

‘내 기억속의 조선, 조선사람들’(퍼시벌 로웰 지음·예담)

천문학자의 조선 유람기. 부산항부터 제물포, 서울에 도착하기까지여정과 조선의 문화를 소개.

‘10일간의 조선항해기’(홀 바실 지음·삶과 꿈)

영국 라이어호 함장이었던 저자가 1818년 조선 서해안을 항해한기록을 담은 책.

‘가련하고 정다운 나라, 조선’(조르주 뒤크로 지음·눈빛)

조선 군대가 유럽식 의상을 입고, 양반들이 서구 은제품으로 차를마시는 사진 등을 통해 전통이 무너지는 조선의 상황 등을 묘사.

‘이방인이 본 조선 다시읽기’(신복룡 지음·풀빛)

20여명의 서구인들이 낯선 이국 땅을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봄.

‘조선 기행’(샤를 바라 외 지음·눈빛)

미지의 세계와 다름없는 조선 민초들의 친절함과 한반도의 아름다운 풍경을 사진과 글로 엮음.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이사벨라 버드 비숍 지음·집문당)

이사벨라 버드 비숍의 조선 관련 서적들 중 ‘갑오경장’ ‘을미사변’등 사건을 기록.

‘이방인이 본 조선…’은 ‘하멜 표류기’의 저자 하멜, ‘서해 5도’의 풍물을 소개한 홀, 반 식민지 사학자였던 그리피스 등 20여명의 서구 사람들의 조선관이 담겨 있다. “조선인들이 가난하고 생산성이 낮은 이유는 부패한 관리의 수탈 때문”이라는 영국의 지리학자 이사벨라 버드 비숍의 지적을 통해 예나 지금이나 민초들이 ‘가진 자’에게 희생당하고 있음을 각인시킨다. 저자인 신복룡 건국대 정외과 교수는 “서양인들이 조선땅을 처음 밟으면서 느꼈던 다양한 생각을 다시 보면서 역사의 윤회가 주는 교훈을 얻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들 책의 공통점은 ‘낯설음’과 ‘신기함’이다. 이방인들은 조선을 일본과 비교하거나 온돌방의 뜨거움에 곤혹에 빠질 때도 있지만 서민들의 인간적인 모습이나 조선만의 전통문화에 놀라워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조선 말기의 ‘흔적’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다. 한옥이 헐린 자리에 초현대식 빌딩이 들어섰고 댕기머리 대신 노란 물을 들이는 게 유행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서양인들이 적어 놓은 조선 말기 ‘그때 그 시절’을 읽으며 한국인의 정체성을 다시금 생각해 보면 어떨까.

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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