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동네]박완서 “문학이 모욕당해야 하는가”

  • 입력 2001년 11월 22일 09시 54분


“박완서 선생님 이야기 들으셨죠? 원래 정치적인 이야기를 거의 안하시는 분인데… 이문열씨 책 장례식 소식에 아주 불쾌하셨나봐요. 문단 중진분들도 꽤 난감하신 모양이더라구요.”

어제 만난 한 문학평론가의 전언이었다. 문예중앙 겨울호에 실린 인터뷰에서 박 씨의 말이 문단에 불러일으킨 파장이 만만치 않다는 이야기였다. 그것은 정치적인 것과는 거리를 두어온 박씨의 이력에 더해 후배 문인들의 존경심이 그 파장을 더욱 증폭했을 듯 싶었다.

박완서씨는 이문열씨의 발언을 옹호하거나 가치관 혹은 세계관에는 동의하지는 것은 아니지만, 문학을 ‘장례’하는 대중들의 집단적 행동에 문단이 침묵하는 것을 비판한 것이다. 아직까지 문단에서는 박씨의 발언에 맞서는 의견은 보이지 않고 있다.

(단, ‘이문열 책 반환행사’를 주관한 화덕현씨(부산에서 사진관 운영)가 19일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를 통해 ‘박완서 선생 인터뷰에 답변 드립니다’는 제하의 글을 기고했을 뿐. 여기서 화씨는 박씨에게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 보면 독자에게도 최소한 그런 상처를 받을 권리가 있는 것 아닌가”라면서 최씨의 발언을 되받았다. 문화일보는 21일자에서 이를 다시 인용보도했다.)

▼관련 글 ▼

- "장정일, 문단을 향해 쏟은 독설" ...2001/11/19
박씨의 발언을 처음으로 보도한 것은 중앙일보였다. 이경철 문학담당 기자는 지난 17일자 출판섹션인 ‘즐거운 책읽기’에 실린 칼럼을 통해 박씨의 발언 내용을 소개했다. 몇 일 뒤, 조선일보는 20일자 문화면에서 박씨의 발언과 소설가 장정일씨가 ‘단상’ 형태로 이문열씨를 비판한 내용을 함께 묶어서 사이드 박스로 비중있게 이를 기사화했다.

다음은 < 문예중앙 > 겨울호에 실리는 박완서씨 인터뷰 기사 전문. 인터뷰는 중앙일보 문학 담당인 우상균 기자가 진행했다.

“유지태,참 철부지같죠.나라도 이영애처럼 했을 거 같아요.감당이 안 되는 남자니까….”

 만추(晩秋)의 한기가 느껴지는 11월의 저녁,젊은 시절 자주 오곤 했다는 세실 레스토랑에서 박완서 선생을 만났다.가을,가을하지만 대화는 영화 ‘봄날은 간다’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했다.얼마전 제 1회 황순원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선생을 찾아가 인터뷰 했을 때 “영화를 자주 본다”고 했기에 아무래도 시작은 좀 유한게 좋지 않겠나 싶었다.

 예상대로 박완서 선생은 “호!호!호!” 웃으며 “아주 좋은 영화였다”고 운을 뗐다.그리곤 내 머리를 한 대 치고 간 말 한마디가 “감당이 안 되는 남자”라는 표현이었다.감당이 안 되다니,선생의 나이에도 감당이 안 되는 사랑의 정서가 남아있구나.그 말을 할 때 언뜻 비친 예의 그 수줍어 하는듯한 선생의 미소가 그날 따라 더 맑고 깊어 보였다.

 선생이 살고 계신 서울 동쪽 끝 아차산 기슭에는 벌써 겨울 오는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행정구역상으로는 경기도 구리시에 속하는 그곳의 지명은 ‘아치울’.마당 정면으로 해넘이 하는 산이 보이고 왼쪽으로 한강물이 바라보이는 선생의 집은 몇 발짝만 내디뎌도 서울 사람과 악수할 만한 거리에 있었지만 산속에 포근히 안겨 있는 형세가 사람 마음을 가지런히 모아 놓는 그런 곳이다.서울 잠실 올림픽공원 인근의 아파트에서 그 곳으로 이사한지 3년째,선생은 몸의 건강에서 마음의 평안을 찾았다고 했다.

 움직임이란게 생에서 얼마나 중요한지,그리고 그 움직임을 통해 괴롭디 괴롭던 불면의 밤에서 벗어날 수 있는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알게 되셨다고 한다.밤에는 글을 쓰지 않는 것을 철칙으로 하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불면의 밤이 거듭 육신의 피로로 화하고 그 육신의 피로가 타인에 대한 외면과 짜증으로 돌변하는 일은 그만 사양했으면 했기 때문이었다.그래서 선생은 일상을 더욱 규칙화하는 방법으로 일상의 피로에서 탈출하기로 마음 먹었고 그 방법은 주효했다.선생은 요즘 밤 9시 30분에 잠자리에 들어 새벽 5시쯤 일어나 앞 산을 한두시간 가량 거니는 일로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산책을 나가보면 가을 끝 계절의 변화가 바로 몸 속에 스며드는 느낌에 움찔 놀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라고 한다.앞마당에 핀 장미를 ‘아치울의 노란 장미’라 명명해 주었던 봄날이 가고 나무들이 제 자리에서만 기를 모은 채 옴쭐달싹하지 않아 재미없던 여름도 그렇게 지났는데 이제 가을은 오자마자 겨울로 내달리고 있었다.

 이사온 후 가을마다 절친한 문단 후배들을 집으로 초대해 벌이던 ‘아치울의 가을 파티’를 올해는 생략한 것도 가을이 바람 소리 한 번만 내고 간 느낌을 주는 이유일듯 했다.올해는 외손자가 입시 준비로 선생댁에 머물고 있는터라 아무래도 입시생 있는 곳의 법도는 지켜야하지 않았겠는가,하는 마음이었다고 한다.아치울의 타는 가을을 올해는 보지 못해 서운한 사람들이 있다면 한국땅에서 입시 지옥에 예외는 없다는 자명한 사실을 되새기는 기회로 삼는 것도 현명한 일이겠다.

 선생은 요새 한 월간지에 선생이 살고 계신 ‘아치울’에 관한 20매의 에세이 쓰는 일을 제외하곤 가급적 원고 청탁을 사양하고 있었다.“마감에 쫓겨 허둥지둥 사는 일은 이제 그만해도 되겠다”는 판단이 섰다는 거였다.그렇다고 작품 구상마저 미룬 건 아니라고 한다.매일 빼놓지 않고 신문을 읽고 있고 이곳 저곳 인터넷 서핑도 하고 있었고 e-메일도 자주 사용하는 중이었다.구상중인 작품에 대해서는 “조금이라도 새나가면 김이 빠져서 안되겠다”는 말로 정보 유출을 경계(?)했다.

 이번에 황순원 문학상을 수상한 단편 ‘그리움을 위하여’를 두고 “서사(敍事)의 귀환을 환영한다”는심사평이 있었던 바,이번엔 또 어떤 이야기로 선생의 10만 명 팬들이 책장 넘기는 재미를 보게 될 지 자못 궁금해졌다.덩달아 괜한 심술이 발동해 허구헌날 죽겠다는 얘기만 하고 있는 후배들한테 한 마디 해줄 말씀이 없겠느냐는 질문을 던지고 말았다.

 “그냥 다 예쁘죠.열심히들 살고,쓰려고 하니까요.요새들 잘 안 오려고 하는 자리를 지켜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고마운 일인 거죠.”

 지난해로 문단 데뷔 30년에 칠순을 맞으신 선생은 대신 당신이 어떻게,왜 글을 쓰고 있는지에 대한 말씀으로 대답을 대신했다.쿡,쿡 옆구리를 찌르며 “넌,잘 살고 있는거니”라고 묻던 소설 속 화자의 모습이 연상되는 순간이었다. 

  “체험했던 전쟁에 한이 맺쳐서,그것을 봤으니까 전해줘야겠다는 증언의 의무감이 내 글쓰기의 시발점이었죠.나에게 겹쳐 일어난 우연한 악운을 떠올리며,왜 나에게 닥쳤을까를 고민한 거예요.그런 체험이 바탕이 되면 소설은 우리가 읽었을 때 끄는 맛,즉 재미가 생기게 되죠.재미 중엔 여러가지가 있지 않겠어요.요즘은 확 끄는 오락적인 게 승해서 걱정이지만.우리가 재미라고 생각한 것 중에는 고통도 있어요.자신을 돌이켜 본다거나 인간에 대해 좀 더 깊이 알고 싶어하는 마음이죠.마음보다 깊은 속마음이라고 해야 할까요.얄팍한 행복에 빠졌던 자기에 대한 혐오도 생기고 돌이켜 보고 하다 보면 궁극에 와선 반성이라고 할까.그렇게 나온 작품에 대해 작가가 이러쿵 저러쿵 말할 수는 없는 것이죠.작가가 작품의 전면에 나서기 보다 독자들에게 다양하고 독창적인 방식을 읽혀져야 해요.”

 그러나 그렇게도 말을 아끼는 선생이었지만 소설 외적인 상황이 소설에 위협을 가하는 현실에 대해서는 할 말은 해야겠다고 했다.선생을 만나기 며칠 전에 벌어졌던 이문열씨의 책 장례식을 두고 하는 말씀이었다.

 “그렇게까지 문학이 모독 당하는 일이 생겨야 하는지 모르겠어요.내가 이문열씨와 같은 생각을 하거나 같은 방향으로 가는 것은 아니지만 작가에겐 최소한 그런 상처를 받지 않을 권리가 있는 것 아닌가요.그리고 수많은 문학 단체의 침묵은 또 뭡니까.나는 이런 상황에 대해 어떠한 발언도 없이 그냥 넘기는 건 문학 하는 사람들의 도리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중앙일보 문화부 우상균 기자

<hothead@joongang.co.kr>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