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연구노트]'모더니티'는 종교와 같은 견고한 '폐쇄회로'

  • 입력 2001년 8월 19일 18시 22분


나의 문제의식은 현재 우리의 삶의 방식이 100여년 전만 해도 매우 낯선 것이었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나의 공부는 어떻게 지금과 같은 삶의 방식이 자리를 잡게 되었고, 이런 변화로 인해 우리 삶의 조건이 얼마만큼 달라지게 되었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지금 우리 삶의 방식 전체를 ‘모더니티’(근대성)의 체제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다면, 우리의 ‘모더니티’가 형성된 과정과, 동시에 ‘모더니티’의 ‘우리’가 만들어진 조건에 관한 질문은 피할 수가 없다.

현재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며 살아가는 방식은 ‘모더니티’라고 일컬어지는 새로운 질서에서 도출된 것이며, 이 질서에서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우리’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런 질문에 답하기 위해 나는 무엇보다도 ‘모더니티’가 재생산되고 유통되는 통로를 살피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그 통로 중에서 나의 관심을 끄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우리 몸에 슬며시 각인돼 너무나 자연스럽게 우리의 습관과 몸 동작이 돼 버린 것이다. 자기도 모르게 저절로 이루어지는 이런 습관적 행위를 통해 ‘모더니티’는 쉴새없이 자신의 효과를 확인하고 정당성을 확보한다. 상투를 자르라는 단발령의 역사적 의미에 관해 내가 논문을 썼던 것이나, 거의 모든 어른남자들이 아침마다 얼굴에서 수염을 밀어내느라고 골몰하는 일에 지금 관심을 갖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이다.

다른 하나는 우리의 사고 방향을 일정하게 제약하고 의식의 흐름을 선도(先導)하는 개념 범주다. 문화, 종교, 이성, 예술, 철학, 사회, 자유, 문학, 감정, 역사, 정치, 자연, 민족…. 백여 년 전 우리의 조상들은 이런 개념 없이 세상과 자신의 인생을 정리할 수 있었지만, 우리는 이런 근대적 개념 범주가 없으면 도저히 생각과 느낌을 이어갈 수 없다. 따라서 우리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이런 개념의 작용을 제대로 성찰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저 ‘모더니티’가 마련해 놓은 사고의 회로(回路)속에서 맴돌 수밖에 없다.

내가 우리나라의 종교개념 출현과 파급효과에 대해, 정치와 종교의 분리 원칙에 대해 논문을 썼던 것, 그리고 현재 문명과 문화개념이 작동하는 방식에 대해 조그만 책을 준비하고 있는 것도 이런 문제의식과 관련이 있다.

100년 남짓한 동안 이 땅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한 ‘모더니티’ 체제에 대해 도전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사람들은 마치 항상 이 속에 머물러 있었던 것 같이 느끼며 ‘모더니티’를 당연시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모더니티’는 종교와 같은 견고한 폐쇄회로를 닮아있다.

나는 ‘모더니티’ 방식 외에 다른 존재방식의 삶을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 헤맨다. 나는 하나의 종교체제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방식을 면밀하게 분석하는 종교학처럼, ‘모더니티’의 전체 틀을 파헤치는 종교학적 관점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왜냐하면 기득권을 행사하고 있는 대학이나 연구소는 ‘모더니티’의 신학교(神學校)임을 자처하며 ‘모더니티’의 폐쇄회로만 강화시키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장석만(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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