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말한다]'조선시대 궁중연향과…'펴낸 김종수씨

  • 입력 2001년 6월 15일 18시 35분


“조선시대에 궁중 연회는 백성을 교화시키는 수단이었습니다. 나아가 임금이 백성과 기쁨을 함께 나누는 대동(大同)의 축제였지요.”

조선왕조의 국가적 연회를 꼼꼼히 고찰한 연구서 ‘조선시대 궁중연향(宴饗)과 여악(女樂)연구’(민속원)가 나왔다. 저자는 서울대 국악과에서 석 박사 학위를 받고 모교 강사로 활동중인 음악학자 김종수(사진)씨.

그는 “군주가 백성들의 인심을 감화시키는 데 쓰였던 연향이 종종 지배층 향락의 수단으로 오해되어 왔다”며 “이런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고자 책을 쓰게 됐다”고 밝혔다.

“조선 초기에는 세가지 국가적 연회가 있었습니다. 군주와 신화의 화합을 도모하는 회례연(會禮宴), 노인 공경을 임금이 솔선하는 양로연(養老宴), 문무백관과 왕실의 친인척 등이 정을 두터이 쌓는 진연(進宴)이 그것이지요. 모두 국가의 이념적 목표에 따른 것이지, 놀고 마시는 자리가 아니었어요. 조선 후기에는 진연이 위주가 되고 숫자도 줄어들지만, 그것은 지방 백성까지 격려하는 전국적 규모로 행사가 커졌기 때문이죠. 이것을 보아도 소수 지배층의 향락을 위한 자리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행사에서 여악(女樂·여자 악사)이 담당하는 기능도 그동안 잘못 해석돼 왔다고 지적했다. 병자호란 직후 또는 연산군 재위시에 여자 악사들이 향락의 도구로 사용되기도 했지만 이는 짧은 시기에 국한된 일이었으며, 대부분의 경우 여악은 왕실 여인이나 친인척이 참석하는 내연(內宴)에서만 활동했다는 것.

또 그는 조선후기에 의녀(의술을 하는 여자)와 침선비(針線婢·바느질하는 여자)가 연회에 동원되었던 것 역시 지방 기녀 동원에 따른 국고 낭비를 줄이기 위한 순수한 동기에서였다고 밝혔다.

“한때 국력이 약해지거나 쇠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조선 왕조가 그처럼 부실하거나 호락호락한 왕조는 아니었습니다. 성리학과 조선후기를 부정적으로만 보아온 잘못된 시각을 바로잡는 데 제 연구가 작은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좋겠어요.”

서울대 독문과를 졸업한 김씨는 학창 시절 루이제 린저와 베토벤에 심취했던 ‘서구파’ 출신. 대학 2학년때 우연히 FM에서 국악을 접한 뒤 신비한 음향에 이끌리게 됐고, 가야금을 배우다 대학원때부터 아예 국악이론 연구로 방향을 선회했다. 그러나 국내에서 국악이론 분야는 불모지나 다름없기 때문에 기초가 되는 국사학과 한학을 따로 공부해가며 국악문헌 연구에 몰두해 왔다.

“우리 음악이 어렵다면, 그것을 어려서부터 만나기 힘들기 때문이죠. 많은 사람들이 생활속에서 쉽게 우리 음악을 접하며, 친구들과 만나서도 자연스럽게 우리 춤과 노래로 흥겨워할 수 있는 때가 왔으면 좋겠어요.” 318쪽 1만3000원.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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