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우 엄마의 와우! 유럽체험]베를린 리포트

  • 입력 2001년 3월 2일 10시 12분


독일의 수도 베를린은 만만치 않은 도시.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필요한 정보만 추리는데도 한시간이 뚝딱 지나고 말았습니다. 웬만한 독일 도시는 걸어서 다닌 나우네 가족이지만,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아, 편안한 씨티투어 버스를 탔습니다. 마음대로 타고 내릴 수 있고, 나우가 자는 동안에도 한바퀴 더 돌면 되니까 편리하더군요.

출발지는 동물원 역. 바로 곁에 동물원이 있어 붙은 이름입니다. 여기 서서 북쪽을 보면 왕가의 수렵장이었던 티어가르텐이 나오고, 그 한가운데 우뚝 서 있는 전승기념탑 꼭대기에는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에 등장했던 황금의 여신이 보일 거예요. 여기서 동서로 이어진 6월 17일 거리를 따라, 유리 돔으로 유명한 독일국회의사당, 통독의 상징인 브란덴부르크 문이 차례로 등장합니다. 이 문 바로 옆에 침묵의 베를린 장벽이 28년간 군림했던 것으로, 지금은 장벽의 시멘트 조각을 팔고 있는 기념품 상인들만이 그 시절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부근의 박물관섬(museumsinsel)은, 박물관이 모여 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에요. 박물관에 그리 조예가 깊지 않은 평범한 나우엄마가 홀딱 반한 곳이 있으니, 바로 페라가몬 박물관. 유모차를 밀고 다닐 수 있게 되어 있으니까, 안심하고 낭만적인 고고학 산책에 빠질 수 있는 곳입니다.

박물관에서 나오면 강변을 따라 노천시장이 늘어선 것이 보이실 거예요. 일요일 아침마다 열리는 장터나 훔볼트 대학 노천서점은 각종 잡동사니 수집하는데 너무 좋은 곳이에요. 인테리어 책을 수집하는 나우엄마는 매주 이곳에 들러 소장도서를 늘리는 재미에 폭 빠졌었답니다.

출출하다 싶으면 베를린 사람들 처럼 아침식사 하세요. 베를린 사람들은 친구끼리, 부부끼리 카페에서 아침 먹는 것을 즐깁니다. 저녁에 모임을 갖는 우리와 반대죠. 보통 카페에서는 저들만의 독특한 아침 메뉴를 개발해서,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아침식사를 제공하구요. 주말에도 일찍 기상하는 독일인들에게 딱 어울리는 라이프 스타일이죠. 아침 맛있게 하는 카페와 메뉴의 특장점을 담은 책까지 나와 있을 정도니까, 이들의 아침식사에 대한 열정을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이것 말고도 베를린 사람들의 자랑은 카라얀이 이끌던 베를린 필하모니. 표를 구할 수 없다면, 일요일 오전 11시, 베를린 필의 미니 연주회를 놓치지 마세요. 단돈 15마르크에 실내악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니까요. 베를린에 넉넉하게 머물 수 있으신 분은 미리 베를린 필의 스케줄을 보고, 원하는 레퍼토리 공연을 예약하시면 됩니다. 연주 시작 전에 홀에서 샴페인과 과일펀치를 마시며 필하모니의 밤을 즐기는 현지인들과 어울려 보는 것도 색다른 체험이 되실 거에요.

베를린의 쇼핑가가 궁금하시면 프리드리히 거리(Friedrichstrasse)로 가세요. 매장마다 강호동 같이 듬직한 경호원이 보초를 서는 최고급 명품 매장들. 최고급 레스토랑과 호텔이 늘어 서있고, 양손에 공포의 쇼핑백을 든 동양 여성들로 가득한 거리입니다. 나우엄마처럼 패션보다 독일식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으시면, 가구 골목인 울란 거리(Urlanstrasse)로 가세요. 다양한 가구점들이 밀집해 있고, 큼직한 가구 전문 쇼핑몰도 있거든요. 군더더기 없는 독일식 미니멀리즘의 극치를 맛보시게 될 거에요.

쇼핑을 하려면 기력이 필요한 법. 막간의 허기를 때우기 좋은 곳은 핫도그 가게입니다. 빵 사이에 오이피클, 말린 양파 볶음, 케첩, 겨자를 섞어 먹는 베를린 핫도그의 맛이란! 부슬거리는 독일 소나기나 내리는 날이라면, 부근에 있는 굿프렌즈(Good Friends)에서 푸짐한 완탕수프(만두국) 드세요. 이곳은 베를린 사람들이 뽑은 넘버원 레스토랑으로, 1000가지 메뉴를 자랑하는 중국식당입니다. 비가 오는 날은 뽀얗게 김이 서린 창가에서 독일인들이 나란히 앉아 후후 만두국을 먹는 풍경이 재미있어요.

베를린의 샹제리제인 쿠담 거리는 저녁에 둘러보시는 게 좋습니다, 화려한 호텔과 쇼핑가가 5km에 걸쳐 계속되는 베를린의 명동거리죠. 이곳에는 베를린 최대의 백화점 카데베(Kadewe)가 있는데, 꼭대기 층의 카페테리아에서 보면, 전쟁 중 폐허가 된 카이저 빌헬름 교회 야경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폭격으로 부서진 교회를 그대로 둔 이유는 후세들로 하여금 전쟁의 참상을 기억하게 하기 위해서였다는군요. 폭파된 교회에서 주말 저녁에 열리는 오르간 콘서트를 듣고 있노라면, 이 순간의 평화가 값지게 느껴지실 거예요.

독일에서 가장 큰 도시이지만, 어디서나 숲과 공원, 호수를 만날 수 있어 호젓한 느낌이 드는 베를린. 저녁 해질 무렵, 동네 아이들과 자전거를 타거나, 조용한 달렘의 주택가 푸른 들에서 뛰놀던 말들의 한가함이 그립습니다.

전쟁과 분단의 고통. 여기 저기 파헤쳐진 베를린이기에, 그들도 우리처럼 시간이 필요합니다. 통일 이후의 과도한 세금 부담 때문에, 이럴 줄 알았으면 베를린 장벽을 더 높이 쌓는데 돈을 낼 걸 그랬다며 냉소하는 서독의 전후세대. 서독의 자본주의에 적응하지 못하는 동독민의 침울한 표정이 교차하는 곳이기도 하지요.

풀어야 할 수많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나우네 가족이 베를린에서 배운 점은, 파헤쳐진 땅 밑에서 속살이 나길 기다리는 인내심이었습니다. 묵묵한 노동과, 내가 심은 나무에 대한 책임감. 나우가 커갈 수록, 나우엄마가 명심해야 할 마음 자세이기도 합니다. 아우프비더젠(Auf Wiedersehen).

나우엄마(nowya2000@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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