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가방 찾으려 올라탄 신칸센 킬러들이 왜 이리 많은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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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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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비틀/이사카 고타로 지음·이영미 옮김/596쪽·1만4300원·21세기북스

신칸센은 출발했고 퇴로는 없다. 각기 다른 목적을 갖고 신칸센에 오른 킬러들이 임무 완수와 생존을 위해 치열한 전쟁을 치르는 내용의 장편소설 ‘마리아비틀’. 21세기북스 제공
신칸센은 출발했고 퇴로는 없다. 각기 다른 목적을 갖고 신칸센에 오른 킬러들이 임무 완수와 생존을 위해 치열한 전쟁을 치르는 내용의 장편소설 ‘마리아비틀’. 21세기북스 제공
킬러들의 세계를 다룬 얘기는 많다. 기차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추격전도 이미 낯익다. 하지만 일본 도쿄에서 출발해 모리오카로 가는 시속 200km의 신칸센을 무대로 한 이 작품은 어딘가가 다르다. 서로 정체를 모르는 킬러들이 잠깐 스쳐 지나갈 때 일반인인지 킬러인지 꿰뚫어 본다거나, 함정을 던져놓고 상대방이 걸려들기 바라는 심리전이 팽팽하게 전개된다. 단지 총만 잘 쏜다고 킬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사건은 이렇다. 하는 일마다 꼬이는 킬러 ‘나나오’는 신칸센을 탄 뒤 가방 하나를 갖고 내리라는 청탁을 받는다. 간단한 일인 줄 알았지만 사실 이 가방은 업계에서 알아주는 킬러 듀오인 ‘밀감’과 ‘레몬’이 암흑세계의 거물 ‘미네기시’의 청탁을 받고 운반 중인 가방. 그러나 정작 가방은 신칸센에 타고 있는 중학생 킬러 ‘왕자’의 손에 들어가고, 패닉에 빠진 밀감과 레몬, 그리고 나나오는 이 가방을 찾기 위해 기차를 뒤지기 시작한다.

등장하는 20여 명의 인물이 대부분 킬러인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인물은 영민하고도 사악한 ‘왕자’다. 그가 자신을 죽이려고 신칸센에 탑승한 ‘기무라’를 전기충격기로 제압한 뒤 기무라의 총을 빼앗는 장면. 기무라가 “소리를 지르겠다. 총은 네가 들었으니 곤란한 건 너겠지” 하고 위협하자 왕자는 이렇게 비웃는다. “알코올 중독인 실업자 아저씨랑 평범한 중학생이랑 누가 더 동정을 받을까. 아저씨가 먼저 위협해 권총을 뺏었다고 하면 되지.”

600쪽에 달하는 두툼한 작품이지만 종점인 모리오카로 가기 전까지 사건들이 쉼 없이 터지며 긴장감을 높인다. 특히 가방을 갖고 한시바삐 내리고 싶은 나나오와 이 가방을 지켜야 하는 밀감과 레몬, 그리고 가방을 두고 이들이 허둥대는 상황을 즐기는 왕자의 심리전이 좌석과 화장실, 통로 등 곳곳에서 숨바꼭질처럼 펼쳐진다. 킬러들의 원한 관계 등이 양념처럼 첨가돼 사건과 상황에 대한 흡인력을 높인다.

“사람들에게 ‘맘대로 행동을 하라’고 하면 제일 먼저 하는 게 타인이 뭐 하는지 살피는 것”이라는 왕자의 얘기를 비롯해 인간의 행동, 살인, 형법 등에 관한 킬러들의 다채로운 시각을 엿보는 것도 흥미롭다.

킬러들의 죽고 죽이는 혈투는 신칸센이 어느덧 종착역에 도착하며 마무리된다. 숨 막히던 초중반에 비해 마지막은 다소 싱겁다. 중간에 탑승한 노인 킬러들인 ‘기무라 부부’가 객차 내 혼돈 상황을 단번에 정리하고, 거물 미네기시도 ‘너무도 간단히’ 제거된다. 특히 작품 속 갈등을 이끌던 왕자의 행방이 묘연하게 끝나는 점이 가장 아쉽다. 이 작품이 2009년 국내에 소개된 또 다른 킬러들의 얘기 ‘그래스호퍼’의 후속작인 것을 감안하면 ‘3편’을 기대할 수도 있을 듯하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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