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해튼 프로젝트 21]"구경은 싫다…관객도 같이 놀자"

  • 입력 2000년 7월 11일 19시 08분


무대도 없고 객석도 없다. 연극도, 뮤지컬도 아니다. 전위적인 퍼포먼스인가하면 질펀한 놀이다. 오감을 자극하는 즐거운 파격. 관객은 열광하고 비평가는 찬사를 보낸다. ‘동키 쇼’(The Donkey Show)와 ‘데 라 과르다’(De La Guarda). 뉴욕 오프브로드웨이를 들썩이며 공연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오프브로드웨이는 향후 ‘본 무대’인 브로드웨이의 판도를 가늠하게 해준다.

■셰익스피어와 디스코의 만남

‘동키 쇼’가 열리는 ‘클럽 엘 플라멩고’에 들어서면 당혹스럽다. 공연장인 줄 알았더니 디스코텍이다. 널찍한 플로어, 몇 개의 테이블, 현란한 조명, 디제이 박스, 맥주와 칵테일을 파는 바까지. 앰프에서는 귀에 익은 디스코 노래가 귀청을 때린다. 댄스 플로어에서는 육감적인 남성 댄서들이 현란한 춤을 선보인다. 관객도 분위기에 취해 어울린다.

정신 없는 디스코판 30여분. 본 공연은 셰익스피어의 ‘한 여름밤의 꿈’을 디스코풍으로 리메이크한 ‘한 여름밤의 디스코’다. 중세의 숲을 찾은 연인들의 뒤죽박죽 사랑 이야기를 70년대 디스코텍에 놀러온 커플 사이의 해프닝으로 둔갑시켰다. 관객은 관람자이면서 엑스트라인 셈이다.

인물 설정도 기발하다. 원작의 오베론 왕은 거만한 디스코텍 사장으로, 요정의 여왕인 티타니아는 관능미 넘치는 댄서로 바꿨다. 장난꾸러기 요정 퍼크는 외계인 복장에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플로어를 누빈다. 압권은 상대의 파트너에 눈 멀게 만드는 사랑의 묘약을 코카인(마약)으로 바꾼 것. 셰익스피어의 시적인 대사는 도나 섬머나 아바 등이 부른 70년대 디스코 노래가 대신한다. 50대 중년부터 10대 고등학생까지 어울려 댄스파티를 벌인다. 공연이 끝나도 한 여름 밤의 디스코 축제는 새벽까지 계속된다.

■공중에서 펼쳐진 비상의 꿈

아르헨티나 작품 ‘데 라 과르다’ 공연장에 들어서면 검은 장막이 둘러처진 어두컴컴한 공간이 전부다. 갑자기 바람소리가 들리더니 머리 위의 하얀 막이 밝게 빛난다. 괴성을 지르며 하늘을 나는 배우의 그림자가 비친다. 형광색 작은 공과 풍선을 떨어뜨려 아름다운 스크린을 연출하기도 한다. ‘후두두둑…’ 형광액을 뿌리는 소리가 들리고 조명이 꺼지면 별이 빛나는 밤하늘로 바뀐다.

배우들이 괴성과 함께 천정 스크린을 찢으며 나타났다 공중으로 사라진다. 놀란 관객들의 비명. 이내 막이 모두 찢어지면서 3층 높이의 극장 천정이 드러난다. 정장 차림에 밧줄을 매단 배우 10여명이 2,3층 벽면에서 튀어나와 날아다닌다. 공연이라기 보다는 곡예에 가깝고, 정확히는 퍼포먼스다. 공연 부제가 ‘나는 법 배우기(Learn to Fly)’. 대사 없이 라틴 음악과 곡예만으로 상징적인 장면을 잇달아 연출한다. 높은 오피스 빌딩속에서 경쟁, 하루에도 열 두 번씩 창문 밖으로 날아다니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표현한다.

공연 도중 옷이 젖는 것도, 한시간 넘게 서서 고개를 쳐들고 있어야 하는 것도 관객은 개의치 않는다. 마지막에 배우들은 관객을 한명씩 끌어안고 공중으로 날아오른다. 관객과 함께하는 축제의 시간이 이어진다.

■쌍방향 커뮤니케이션

두 공연은 브로드웨이 대작 못지 않은 인기와 찬사를 얻고 있다. 뉴욕타임스를 위시해 타임 빌보드 피플 등 주요 매체가 앞다투어 대서특필했다. 연극도 뮤지컬도 전통공연도 아니면서, 동시에 그 모두인 새로운 형식을 창조한 것을 높게 평가했다.

기발한 아이디어만으로 얻은 반짝 인기는 아니다. 요즘 한 달을 넘기기 힘들다는 오프브로드웨이 공연시장에서 ‘동키 쇼’는 1년, ‘데 라 과르다’는 2년 가까이 성황을 이루고 있다. 오랜 준비와 맹연습이 뒷받침된 탄탄하고 정교한 연출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데 라 과르다’의 경우 공중쇼 배우들의 기량은 서커스 단원을 뺨치는 수준이다. 또 ‘동키 쇼’ 주인공의 연기는 공연이 끝나야 1인2역이었음을 알 정도로 감쪽같다.

두 공연의 큰 특징 중 하나는 ‘관객 참여’(Audience Participation)다. 수동적인 구경에서 벗어나 배우들과 함께 하는 즐거움을 누린다. 공연예술의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이런 것일까. 남사당 놀이나 봉산탈춤 같은 공동체 연희의 정신이 뉴욕에서 꽃을 피운 것일까.

뉴욕=윤정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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