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뿌리읽기]<143>정숙(靜肅)

  • 입력 2004년 12월 19일 18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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靜은 소전체(왼쪽 그림)에서 靑과 爭으로 이뤄졌는데, ‘설문해자’에서는 爭이 소리부라고 했다. 爭은 갑골문에서 두 손(又·수) 사이에 어떤 물건을 놓고 서로 가지려 ‘다투는’ 모습을 그렸다. 靑은 갑골문에서 초목이 자라나는 모습인 生(날 생)과 염료로 쓸 광물을 캐는 鑛井(광정)을 그린 丹(붉을 단)으로 이뤄져, 광물(丹)로 만들어 낸(生) ‘푸른 색’의 의미를 그려낸 글자다.

靑은 음양오행에서 보통 東方(동방)의 색으로 여겨지며, 동방은 초목이 생장하기 시작하는 때를 상징하므로, 靑은 바닷물처럼 파란색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초목이 막 자라날 때 띠는 푸른색을 말한다.

사실 靜은 원래 화장의 농염을 말할 때 쓰던 것으로, 자연색에 가까운 화장 색을 말했다. 고대 중국인들은 자연색에 가까운 화장을 튀지 않고 안정되며 조용한 색깔로 인식했던 것이다. 그래서 靜에 맑고 고요하다는 뜻이 나왔다. 그것은 화려한 화장이 사람의 마음을 흔들고 욕정을 움직이게 만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는 지난 번 풀이했던 毒의 자원에서처럼, 머리에 화려한 장식을 달고 짙게 화장한 여인(每·매)이 사람을 유혹하고 파멸로 이끄는 ‘독’이라고 인식했던 것과 같은 이치다. 그래서 가능한 한 푸른(靑) 자연색을 견지한(爭) 화장이어야 맑고 조용하고 안정된(靜) 이미지를 가져다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렇다면 爭 역시 의미의 결정에 관여하고 있는 셈이다.

肅은 금문(오른쪽 그림)에서 손으로 붓을 쥔 모습(聿)과 그 아래로 수를 놓을 무늬 판이 그려져 있다. 정교하고 아름다운 수를 놓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밑그림이 필요하다. 肅은 이처럼 수를 놓을 밑그림을 붓으로 그리는 모습이며, 정교한 밑그림을 그리려면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 이로부터 ‘조심해서 일을 처리하다’ 또는 ‘엄숙한’ 등의 의미가 나왔다.

그러므로 靜肅이란 단어가 지금은 성에 관계없이 널리 쓰이지만, 그 뿌리는 남성이 아닌 여성이다. 즉 화장을 거의 하지 않은 듯한 여인이 수를 놓고 있는 모습에서 생겨난 단어다.

하영삼 경성대 교수 ysh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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