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 다이제스트]「화가 이중섭」

  • 입력 1999년 4월 16일 18시 38분


“그의 예술이 누릴 명예의 보상으로, 예술가는 그 명예 이상의 비극을 경험하지 않으면 안된다. 행복한 예술가란 없는 것이다.”

행복을 비켜가며 쓰디쓴 삶의 길을 걸은 화가 이중섭. 그 쓴맛을 태워 시대의 대표적 예술로 승화시킨 40세의 삶. 73년 필자가 쓴 최초의 평전 ‘이중섭 그 예술과 생애’의 수정본이다.

신원조사서의 ‘존경하는 인물’한 칸을 못 메워 밤을 새우고, ‘그림으로 세상을 속여온 데 대한 반성’이라며 여관 디딤돌 위의 신발들을 다 빨기도 했던 중섭의 순진함. 정신의 순결은 그의 예술을 구원했지만 그의 생활을 구원하지는 못했다.

저자는 지인들의 증언을 추적해 중섭의 고단한 삶을 낱낱이 그려낸다. 일본에 건너간 부인이 마련해준 생활비도 사람을 쉽게 믿은 탓에 손에 쥐지 못하고, 신문소설 삽화 연재도 ‘세상경험이 없어 못한다’며 거절하고 만다. 자기학대에 가까운 삶의 방임은 마침내 그를 요절로 내몬다.

“전쟁 뒤에는 소 눈도 흐려졌어….” 평생 소에 천착했던 그가 곧잘 내뱉었다는 한탄. 더럽혀져 가는 현실이 소의 눈을 통해 그의 예술적 직관에 포착된 것이었을 터이다. 그의 요절도 세상의 ‘흐림’을 피하기 위한 도피였을까.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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