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표절? 참고?… 저작권, 불법과 합법 사이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0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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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를 위한 엔터테인먼트/표종록·이영욱 지음/296쪽·1만2000원·라이프맵

본격적인 책 이야기에 앞서 몸 풀기 퀴즈 하나. 다음 중 저작권을 침해한 이는 누구일까?

하나.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의 도학찬: 야한 영화들의 베드신, 속칭 ‘엑기스’만 모아 가내수공업으로 편집한 비디오를 친구들에게 돌려 여자친구 생일선물 값을 마련했음.

둘. 영화 ‘써니’의 하춘화: 라디오에 보낸 신청곡 사연이 떡하니 당첨, 흘러나오던 인기가요를 공테이프에 녹음.

셋. 홍길동 부장: 소싯적 좋아했던 브룩 실즈의 원본 사진을 다시 촬영해 현상하고 인화해 소장했으며 책받침 등으로 사용했음.

넷. 뮤직비디오 ‘대구스타일’의 대구사나이: 싸이의 ‘강남스타일’의 뮤직비디오를 그대로 패러디한 영상을 유튜브에 올려 조회수 100만여 건을 기록함. (정답은 마지막에)

해마다 시월이 되면 라디오 선곡표가 예측 가능해진다. 아마도 월초엔 바리톤 김동규의 중후한 목소리가 돋보이는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가, 월말엔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로 시작하는 이용의 ‘잊혀진 계절’이 들릴 것이다. 노래를 들으며 또 일부는 꼭 이렇게 한마디씩 할지도 모른다. “저 가수 저 노래로 엄청 벌었을 거야. 그치?”

이 책은 우리 곁에 가까이 다가온 ‘엔터테인먼트 법’을 중심으로 다양한 판례들을 소개한다. 위 퀴즈의 정답이 누구든, 가수 이용이 얼마를 벌든 분명한 사실은 저작권 문제가 이제 더이상 원작자와 관련 업계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손쉽게 가수 2PM의 ‘Hands up’을 음원파일로 추출한다거나 미개봉된 외화를 한글 자막까지 달아 파일공유 사이트에 업로드할 수 있고, 개인 블로그에 인기작가의 소설작품을 연상시키는 아류작을 올릴 수도 있다. 그것이 원작에 대한 오마주든, 다 함께 즐겨보자는 ‘공리주의’의 발현이든, 원작으로부터 얻은 모티브든 모두 저작권 침해에 해당된다.

개인의 즐거움을 위해 향유하던 문화가 모든 이의 ‘산업’이 되면서 겪게 된 변화들이다. 이를 두고 저자는 “기술의 발달은 기존의 저작권법에 새로운 고민거리를 던져주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현직 법률자문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연예업계 종사자들이 현장에서 실질적인 도움을 얻을 수 있도록 책을 구성했다. 총 4장에 걸쳐 크게 저작권, 초상권과 패러디, 저작물 다운로드, 전속계약 등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한다. 특히 전속계약에 관한 마지막 장엔 다양한 사례들이 소개돼 무료 법률상담을 받는 느낌을 준다. 익명처리가 돼 있지만 업계 종사자라면 누구나 알 법한 다양한 사례는 타산지석의 예로 삼을 수 있다. 부록으로 실린 연기자 중심, 가수 중심 표준전속계약서도 일반인이 한 번쯤 읽어봄 직하다.

잘 알려진 외화나 우리 영화와 얽힌 저작권 이야기도 흥미롭다. 영화 ‘어바웃 어 보이’ 속 휴 그랜트가 캐럴 하나 잘 작곡한 아버지 덕에 평생을 먹고살 걱정 없게 된 사연, 영화제작사가 원곡의 저작권료를 감당할 수 없어 비틀스 노래의 커버버전(다른 가수들이 재녹음한 곡)을 쓴 영화 ‘아이 엠 샘’의 뒷이야기 등이 그렇다.

매번 신곡이 나올 때마다 표절 논란에 휩싸이는 가수, 기획사와 전속계약 해지로 법정공방에 시달리는 연기자들…. 하루가 멀다 하고 포털 사이트를 뒤덮는 이런 뉴스들의 사연이 궁금했다면 참고하기 좋은 책이다.

※정답: 대구사나이를 제외한 나머지 셋 모두다. 복제와 전송 기술이 원작만 못하다는 이유로 당시에는 문제 삼지 않았던 사례들도 날이 갈수록 정교해지는 기술 발전에 따라 현재는 저작권법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 대구스타일의 경우 원저작자인 싸이의 저작권 ‘방임’ 덕에 탈이 없었다. 그 대신 원저작물까지 후광을 입은 윈윈 패러디 사례로 기록됐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저작권#엔터테인먼트#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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