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YT 특약]서울 「M&A 시장」으로

  • 입력 1997년 12월 28일 19시 58분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게 된 한국은 이제 자국 기업들이 미국 및 다른 외국 기업들에 의한 인수 및 합병(M&A)가능성에 직면, 국가 자존심에 커다란 타격을 받고 있다. IMF의 구제금융이 한국을 외국 투자자들에게 개방토록 강요한 것처럼 한국의 주가 폭락과 원화(貨)가치 하락은 한국 기업들이 외국기업들 한테 잠재적으로 매각될 가능성을 더욱 높여 주었다. 한국의 주가는 올해 들어 거의 10년만에 가장 큰 폭인 42%가 떨어졌으며 원화의 가치는 달러화와 비교, 50%가 폭락했다. 이 두가지 요소의 결합으로 주가는 달러로 환산할 때 3분의 2가량 떨어졌다. 세계 최대 컴퓨터 메모리칩 생산업체인 삼성전자의 주식자본은 이제 겨우 24억달러에 불과하며 1백대 이상의 항공기를 보유하고 있는 대한항공의 자본은 보잉 747기 2대 값에 조금 못미치는 2억4천만달러이다. 이와 함께 지난 수십년간 가족중심으로 경영된 한국 재벌의 대부분은 파산 혹은 과도한 부채로 위기에 처해 있으며 재벌들은 일부 주력기업의 매각을 강요당하고 있다. 이달 초 서울에서 한국기업인들과 만난 뉴저지주 민주당 상원의원 로버트 토리첼리는 『한국은 바야흐로 자신들의 주요한 자산들중 일부가 폭발적으로 팔리는 사태를 목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늘 또 다시 한국 건설업체중 하나인 청구그룹이 은행으로부터 차입금의 즉각적인 상환요구를 받은 뒤 11억 달러 규모에 이르는 부채를 재조정하기 위해 법원에 화의 신청을 냈다. 이같이 한국의 도산 기업은 급속히 늘어날 전망이다. 특히 예상되고 있는 기업 인수 및 합병 협의가 이미 시작됐으며 일부 구체적인 M&A가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그 예로 미국 사우스 캐롤라이나주 그린빌에 위치한 보워터사(社)가 부도가 난 한라그룹의 자회사이자 독일 기술로 건설된 한라 펄프―제지회사의 인수를 위해 협상을 벌이고 있다. 또 한화그룹도 자회사인 정유회사에 대해 모 외국 업체(로열 더치사로 알려짐)와 매각협상을 진행중이다. 이밖에 기아자동차의 지분을 17%정도 소유하고 있는 미국 포드와 일본의 마쓰다자동차는 기아의 인수에 관심을 갖고 있다. 이와 함께 미국 최대의 자동차업체인 제너럴 모터스(GM)와 서독의 2개사 등 3개사가 현재 한라그룹 산하 주력기업이자 자동차 부품제조업체인 만도기계의 인수에 관심을 갖고 있다. 심지어 가수 마이클 잭슨마저 한국기업 인수에 나섰으며 도산한 속옷 업체가 소유하고 있는 한 스키 휴양지의 매입을 협상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빙산의 일각일 수 있으며 서울은 세계 기업가들과 금융가들이 자산을 사들이려 들르는 가게와 같이 이른바 「산업관광지」로 탈바꿈하고 있다. 한 미국투자은행 서울지점의 책임자는 『돈 있는 사람은 누구라도 한국을 보고 있다』고 말할 정도다. 〈27일자 정리·뉴욕〓이규민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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