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랍 휴스 칼럼]한국인들 우정 고이 간직

  • 입력 2002년 7월 3일 18시 39분


이제 동아일보의 독자들에게도 작별을 고할 시간이 됐다.

한국은 장엄한 모험을 끝내고 뒷마무리를 하고 있다. 엄청난 추진력으로 월드컵을 한국에서 열게 한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은 물론 정렬과 열정으로 월드컵 4강 신화를 만들어낸 거스 히딩크 감독, 그리고 한반도 곳곳에서 ‘붉은 물결’로 응원한 수백만 팬들은 월드컵을 못내 아쉬워 하고 있다.

최근 도쿄에서 만난 정몽준 회장은 나에게 “우리 국민들은 하나임을 증명했다. 자유로우면서도 성숙한 모습을 보였다. 또 감정을 폭발시키지 않고 자제할 지도 알았다”라며 자랑스러워했다.

한국사람들이여! 나는 여러분들이 보여준 ‘우정’이란 아주 멋진 기억을 안고 돌아간다. 나는 이번 월드컵에서 여러분들이 찾은 한국민으로서의 자존심과 자긍심을 지켜줄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조만간 대통령 선거에 나설 것이라고 선언할 지도 모르는 정몽준 회장은 “나는 100%를 이번 월드컵에 쏟았다. 월드컵은 우리 5000년 역사상 처음 열리는 중요한 대회다. 대통령 선거는 5년마다 열린다. 월드컵은 우리 국민들에게 평생 잊지못할 경험이었다. 비록 우리가 결과적으로 준결승에서 패해 실망하기는 했지만 나는 이번 월드컵을 통해 지난 10년동안 국제축구연맹(FIFA)에서 일하면서도 제대로 알지 못했던 축구의 영향력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이제 월드컵의 파급효과를 잘 알고 있다. 이번 월드컵은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서야 성공할 수 있었다. 한국과 일본이 축구장 등 축구인프라에 쏟은 투자가 조만간 또다른 결실을 얻을 것이다.

한국은 사상 첫 공동개최 월드컵에서 확고한 자존심과 역동성을 가지고 대회의 절반을 성공적으로 잘 치러냈다. 88올림픽이 끝난뒤 세계는 한국에 대한 생각을 바꿨다. 세계는 한국을 세계속의 ‘이태원’ 정도로밖에 여기지 않았다. ‘이태원’은 한때 억압받는 노동자들이 만든 싸구려 모방제품이 널려 있던 곳이다. 옳던 그르던 이런 생각은 올림픽과 함께 사라졌다.

한국은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줬다. 세계 어느나라도 보여주지 못했던 경기장을 ‘가장 빠른 시간에 가장 잘 만들어’ 놓았다. 이것은 세계 최고의 나라가 되고 싶다는 열망을 보여준 것이다.

나는 이번 월드컵과 관련해 브라질의 우승과 호나우두의 부활을 얘기하고 싶다. 이 두가지 이미지는 이번 월드컵이 역대 월드컵중 가장 경기 수준이 떨어지는 대회라는 것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이번 2002월드컵은 호나우두를 위한 대회인 것처럼 보였다. 발작증세를 보이다 프랑스와의 98월드컵 결승에서 처참하게 무너졌던 선수. 그가 다시 돌아왔다. 98월드컵 이후 숱하게 따라붙은 부상이란 악몽을 떨쳐내고 재기할 수 있을까란 주위의 ‘우려’를 잠재우며 우뚝섰다. 독일과의 결승전에서 2골을 잡아내 브라질에 5번째 우승컵을 안겼다.

정말 대단했다. 호나우두는 아직도 26살에 불과한 젊은 선수이다. 그는 돈도 엄청나게 벌었다. 굳이 부상이란 고통을 감내하며 자신을 혹독하게 몰아칠 필요가 없었다. 그는 명성과 함께 은퇴했어도 됐다. 그러나 그의 영혼은 늘 축구를 향해 있었다. 호나우두가 월드컵에서 12번째 골을 넣을 때 '축구황제' 펠레가 현장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펠레도 월드컵을 통해 12골만을 넣었다.

내가 보기에 호나우두는 어른의 몸을 가진 ‘아이’였다. 환상적인 재능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골을 넣고 경기를 즐길 줄 아는 어린이같은 순진함이 있다. 그는 앞으로도 오래동안 우리를 흥분시킬 것이다. 또 말에게나 어울릴듯한 기괴한 이를 드러내며 천진난만하게 웃는 그의 웃음을 우리는 오래 기억할 것이다.

호나우두와 브라질이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72년 월드컵 역사상 5번째 우승컵을 획득했다는 게 이번대회의 가장 큰 수확이다. 서로 불편한 관계를 지속해온 한국과 일본은 이 과정에서 세계 최고의 팀과 세계 최고의 선수가 펼치는 경기를 함께 지켜보며 하나가 됐다.

내가 도쿄에 있을때다. 한때 땅이 움직였다. 리히터지진계 5.2도의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느껴졌다. 황해에서 들려온 총성은 우리에게 아직 한국은 분단된 국가라는 것을 상기시켜줬다. 그러나 축구는 그 분단의 벽을 뛰어 넘었다. 북한이 한국에서 열리는 경기를 지켜본 것이다. 이것은 88올림픽때 평양이 모든 통로를 차단하고 세계가 함께 스포츠 잔치를 벌이는 것을 외면하며 극도로 폐쇄적인 모습을 보여줬던 것과는 판이하게 다른 것이다. 월드컵은 그런 것이다. 사람을 하나로 모은다. 여러분은 축구로 인류가 하나되는 모습을 계속 기억하길 바란다.

나에겐 한국선수들이 보여준 투혼을 영영 잊지못할 것같다. 한국을 4강으로 이끈 홍명보는 정말 대단했다. 그는 만일 지금 다시 축구를 시작한다면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 유럽에서 백만장자가 될 수 있는 자질이 있다. 그러나 너무 늦었다는 점이 아쉬울 뿐이다.

홍명보가 선수생활을 하는 동안 축구는 너무 많이 변하고 발전했다. 나는 한국과 스페인의 8강전에 열린 민주화의 도시 광주에서 팬들을 통해 큰 감동을 받았다. 온통 붉은 색을 입고 펼치는 열광적인 응원은 평생 처음 맛보는 것이었다.

그 감동의 절정은 한 할머니를 통해서 내게 왔다. 표순분이란 68세의 할머니는 "나는 월드컵이 열리기전엔 단 한번도 축구를 본 적이 없다. 선수들이 씩씩거리며 볼을 쫓아다니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신문에 나오는 월드컵기사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읽는다. 축구는 한마디로 놀라운 것이었다"고 말했다.

축구에 빠져든 것을 진정으로 환영합니다 표 할머니. 할머니께서 축구의 열정을 느끼기에 아직 젊지도 늙지도 않았습니다. 끝

잉글랜드 축구칼럼니스트 robhu@compuserv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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