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랍 휴스 칼럼]내가 본 히딩크<중>

  • 입력 2002년 6월 24일 18시 35분


독일戰 구상하는 히딩크 - 신석교기자
독일戰 구상하는 히딩크 - 신석교기자
《두 번만 더 큰 성취를 이룬다면 한국축구대표팀은 최후의 목표, 월드컵을 품에 안게 된다. 나는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보다 더 찬란한 업적을 남길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선수들과 국민, 정치인은 물론이고 재계(財界)의 회의론자들까지 이 네덜란드인을 스포츠 영웅 이상의 자리로 격상시키고 있다. 그는 가끔 평화와 고요, 프라이버시를 외치지만 본래 수줍어하는 부류가 아니다. 평범한 선수였지만 뛰어난 감독이었던 히딩크가 여러분의 나라를 떠날 때 그는 자신이 죽은 후에도 지속될 한국인의 무한한 존경심을 가슴에 안고 갈 것이다.》

지난 토요일 김대중 대통령이 “단군 이래 가장 행복하다”고 했을 때 우리 외국인들은 어리둥절했다. 나중에 알아보니 단군은 곰의 자식으로 5000년전 한국을 세운 인물이었다.

김 대통령은 이런 면에서 날카로운 사가(史家)다. 호랑이는 싸우고 또 싸우는 여러분의 팀이다. 곰은 여러분의 감독이다. 히딩크 감독은 갖가지 감정을 표출하며 터치라인을 어슬렁거린다. 상황이 나빠지면 윗도리를 벗어제친 후 망나니처럼 바닥에 내팽개치기도 하고 기분이 좋으면 거의 그라운드로 뛰어가 주먹으로 뜨거운 대기를 후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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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가 끝난 후 이 곰은 여러분의 선수를 차례로 껴안으며 하나가 된다.

나는 이 부분에 주목한다. 히딩크 효과를 분석하는 숱한 전문가들이 바로 이 인간적인 따뜻함, 히딩크가 전파한 감독과 선수간의 열정과 믿음을 놓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경제연구소 강한수씨는 히딩크 성공 신화를 또 다른 측면에서 치밀하게 분석했다. 강씨는 명확한 목표 설정, 주위 영향에 흔들리지 않고 자기 방식대로 목표를 성취해 나가는 히딩크 감독의 강인함을 꼽고 있다. 그는 또 나이와 선후배 관계를 존중하는 한국의 전통 관습을 타파해 팀을 결속시킨 혁신을 칭찬한다. 그건 사실이다. 히딩크 감독은 다른 모든 유럽 감독들이 하는 바로 그것을 했을 뿐이다. 그는 대표팀의 모든 선수를 능력에 따라 동등하게 대했다.

덕분에 놀랍도록 도전적인 박지성은 21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홍명보나 황선홍, 설기현과 같은 노장 선수들과 똑같은 책임감과 특권을 가졌다.

한국인들에게는 이것이 혁신적일지 몰라도 나머지 다른 세계 축구계에서는 이미 뚜렷한 현상이다. 펠레는 17세 때 브라질 월드컵대표팀에 뽑혔고 호나우두와 아르헨티나의 마라도나도 마찬가지였다. 잉글랜드의 마이클 오언도 18세에 대표팀 주전이었다.

우리가 지켜봤듯 히딩크 축구는 순수한 네덜란드식이다. 히딩크 감독이 이끌던 당시 네덜란드 대표팀을 제외하고 세계 어느 나라 팀도 양 날개가 90분 내내 달리고 수비수와 미드필더가 매 순간 상대를 압박하는 3-4-3 전형으로 플레이하는 팀은 없다.

히딩크 감독은 한국 선수들이 자신의 전술을 너무도 빨리 흡수하는 데 놀라움을 넘어서 거의 충격을 받았다. 감독은 스승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배우는 학생이기도 하다.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회장은 단순히 훌륭한 감독을 구하러 나선 게 아니라 가능한 한 최고의 감독을 원했다. PSV 아인트호벤, 레알 마드리드, 98프랑스월드컵 준결승에 오른 네덜란드 대표팀 감독을 역임했던 히딩크 감독의 경력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대한축구협회는 확실한 비전에 차 있었다. 잘못될 경우 체면이 깎이는데도 아시아의 울타리를 넘어 나갔고 히딩크 감독을 절대 지지했다.

여러분이 선수들의 몸에 붙은 습관을 바꾸려 할 때, 선수들의 몸에 상상을 넘어서는 힘과 체력을 불어넣으려 할 때, 그 과정에서 생기는 결과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김남일은 “감독의 요구대로 힘을 구축하기 위해 전력을 기울였다”며 “내가 강한 플레이를 해야 하기 때문에 그것이 필요했고 이제 나는 유럽 어느 선수를 상대해도 자신이 있다. 나는 상대팀 플레이메이커 사냥꾼이 됐다”고 말했다.

여러분의 선수들 입에서 히딩크 감독과 똑같은 말이 나오는 것을 들을 수 있다. 히딩크 감독은 자신의 경험상 이 수준으로 이기기 위해서는 체력강화가 유일한 길이라는 자신의 철학을 끊임없이 선수들에게 주입해 왔다. 그는 비록 가능성에 의문을 품었지만 마침내 선수들의 정신력을 바꿔냈다. 히딩크 감독은 몇 달 전 “한국 선수들은 얌전하다”며 “매력적이고 온순하지만 우리는 바로 그 부분을 없애야 한다. 우리는 선수들을 좀 더 거칠게 만들어야 한다. 안 그러면 상대가 승리를 강탈할 것이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에서 그 누구도 한국의 승리를 강탈하지 못했다.

히딩크 감독이 사이드라인에 버티고 서서 그토록 강한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한 그 누구도 감히 강탈을 시도하지도 못할 것이다.

나는 이게 바로 히딩크 감독이 18개월간 63명의 선수를 무자비하게 자르고 압축하고도 선수들의 호응을 얻고 있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승리를 쟁취했을 때 선수들은 감독에게 달려든다. 감독이 선수들을 지배하기 때문이 아니다. 감독이 젊은 선수들의 병역의무 면제를 탄원했기 때문도 아니다.

바로 선수들이 가슴속 깊이, 진정으로 그를 좋아하고 믿기 때문이다. 아울러 선수들은 감독 역시 100% 그렇다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이게 바로 ‘경영’이다.

랍 휴스 잉글랜드 축구 칼럼니스트 robhu@compuserv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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