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랍 휴스 칼럼]佛 튀랑 '운명의 골'

  • 입력 2001년 5월 30일 18시 56분


여러분은 운명을 믿습니까?. 여러분은 스포츠가 예술이라고 생각합니까?.

지난해 시드니올림픽 출전 선수들이 ‘당신 안의 예술성을 찾으라’는 노래에 영감을 받았듯 릴리앙 튀랑은 98프랑스월드컵 때 내면에 숨어있던 챔피언의 자질을 찾아냈다.

튀랑은 자신의 운명이라고 생각했던 길을 따랐더라면 지금쯤 묵주를 굴리고 있을 것이다. 어린 시절 튀랑은 성직자가 되길 원했다. 그러나 지금 그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레알 마드리드, 라치오, AC 밀란 등 세계적인 명문 프로축구단이 탐내는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수비수가 돼 있다.

물론 앞에 열거한 팀들은 튀랑을 얻지 못할 것이다. 튀랑은 올 여름 파르마를 떠나 유벤투스에 합류할 예정이라는 소식이다. 돈만 바라고 유벤투스로 가는 것은 아니다.그는 내년에 만 30세가 된다. 운동 선수라면 누구나 걱정이 되기 시작하는 나이다. 그는 월드컵을 또 한번 제패하고 싶고 유럽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주인공이 되고 싶어한다.

튀랑은 놀라운 선수다. 템포를 조절할줄 알 뿐아니라 힘도 갖추고 있다. 튀랑은 98월드컵 준결승전에서 모든 것을 입증했다. 나는 그게 튀랑의 운명이었다고 믿고 있다.

당시 스타드 드 프랑스구장에는 7만6000명의 증인이 있었다. 프랑스는 크로아티아의 다보르 수케르에게 선취골을 내주며 충격에 휩싸였다. 대부분 튀랑이 위치를 잘못 선정해 수케르의 득점을 허용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1분도 채 안돼 튀랑은 동점골을 기록했다. 오른쪽 사이드에서 볼을 받은 그는 질풍같이 상대 문전으로 달려들었다. 볼도 실점에 대한 책임도 일체 동료 선수에게 떠넘기지 않았다. 이윽고 그는 폭발적인 환성속에 대포알같은 슈팅을 했고 볼은 상대 골문을 가로질러 낮게 날아가다 반대편 골포스트 안쪽 네트를 출렁였다.

37번이나 국가대표팀간 경기에 출전했던 릴리앙 튀랑이 프랑스를 위해 처음 넣은 골이었다. 얼마후 그는 또 한번 골을 성공시켰고 팀은 결승에 진출했다.

튀랑이 ‘선택된 조국’ 프랑스를 위해 골을 넣은 것은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일체 없었다. 내가 본 경기중 이처럼 운명적인 장면이 펼쳐졌던 적은 없었다.

다음날 아침 튀랑은 우리 앞에 앉았다. “내가 도대체 무슨 일을 해낸건지 생각하느라 간밤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는 솔직했다. “사실 저 때문에 선취골을 허용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뭔가 재빨리 해야 했습니다. 나는 지금도 내가 내 조국을 위해 첫 두 골을 넣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습니다.”

나는 그에게 운명이 골을 넣도록 한게 아니냐고 물었다. 튀랑은 운명이 스포츠를 규정한다고는 믿지 않았다.

그러나 뭔가 우연치 않은 것이 경기를 앞두고 그 주에 일어났었다. 남프랑스 피레네 산맥에서 고독한 작업을 매달리던 이탈리아인 미술가 아롤도 고베르나토리가 파리 시내 한 복판에서 작품 전시회를 가졌다.

고베르나토리는 평소 무희들을 그려 왔다. 그러나 그해 그의 영감은 월드컵에 쏠려 있었다. 그는 캔버스에 축구 선수들의 이미지를 옮겼다. 지단, 로베르토 카를로스, 호나우두 안에 내재된 미를 재포착하려 노력했다.

마침내 튀랑이 그의 눈을 사로잡았다. 그가 그린 튀랑의 모습엔 뭔가 묘한 구석이 있었다. 그의 그림은 튀랑이 강하고 낮게 골문을 향해 슛을 하는 모습이었다. 나는 고베르나토리에게 “튀랑은 프랑스 대표팀에서 한 번도 골을 넣은 적이 없다. 이 그림은 뭔가 좀 이상하다”고 말했었다. 그러자 그 화가는 “나는 이미 1년전부터 월드컵에 미친 내 아들들 때문에 축구 선수들을 그렸다”고 말을 뗐다.

는 지단이나 호나우두나 튀랑을 만난 적이 없다. 그럼에도 나는 그들을 이해하는 것처럼 느낀다. 언젠가 내가 붓을 놓아야할 때가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언젠가 이 선수들도 더 이상 축구를 할 수 없는 날이 올 것이다. 내게는 그들 역시 예술가들이다.”

말은 이어졌다. “예술가들의 창조력이 갑자기 샘솟는 날이 있는 것처럼 선수들이 자신의 몸안에 숨어있는 창조적 기질에 스스로 놀랄 날이 있을 것이다.”

현재 달력은 1년 앞으로 다가온 또 하나의 월드컵을 가리키고 있다. 누군가 우승할 것으로 운명지어져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한국내 어딘가에서 승리자들의 내면에 숨겨진 미를 표현하기 위해 이미 작업에 들어간 화가나 조각가가 있을 것이다.

우승이 운명이라고? 여러분이 믿기 나름이다.

<잉글랜드 축구 칼럼니스트>

robhu@compuserv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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