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추칼럼]선수와 감독의 궁합

  • 입력 2001년 9월 10일 16시 54분


어떤 한 팀의 시스템을 약간의 억지를 붙여서 아주 단순화시키면 '감독의 작전을 선수가 소화해 낸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선수가 자신의 기량을 100%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것 역시 감독의 할 일이겠지만, 아무래도 선수 선발 및 팀 구성의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것이 감독이니, 감독의 있는 전술을 보다 더 소화해 내고 감독의 입맛에 맞는 선수가 경기에 나오게 된다.

즉, 같은 실력을 가지고 있는 선수라도 감독의 스타일에 맞는 선수에게는 기회가 더 많이 가고, 감독의 스타일과 다른 선수에게는 기회가 더 적게 갈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감독이 바뀌면서 애지중지받던 선수가 졸지에 후보로 빠져버리고, 후보에도 들지 못하던 선수가 어느날부터 주전으로 도약할 수도 있다. 사람이 다 다르고,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생각이 다르며, 축구에 대한 생각이나 지식이 모두 다르니 사람마다 자기 입맞에 맞는 선수가 모두 다른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한번 감독이 바뀌게 되면 주전 선수들이 많이 물갈이되고, 새로운 '자신의' 선수들로 시스템을 구축하게 된다.

이는 신임 감독이 그 전부터 구단에 몸을 담고 있었던 경우에도 해당된다. 재미있는 사실인데, 최근 감독이 교체된 두 구단인 전북과 부천의 경우는 신임 감독들이 다 전임 감독이 팀을 맡을때부터 어떤 경로던지 팀에 관여를 하고 있었다. 남대식 감독은 고문으로, 최윤겸 감독은 코치로 전임 감독들을 보좌하는 자리에 있었는데 즉, 이전의 팀 구성에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런 이들이 감독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감독이 교체되자마자 팀은 적지 않은 변화를 겪게 된다.

전북의 경우를 살펴보자. 남대식 감독이 취임한 후 첫경기가 7월 21일 경기였는데, 그 이후부터 출전선수의 변화가 생긴다. 그전까지 비교적 많은 경기를 소화해 내던 박경환, 조란 선수가 빠지고, 심지어 작년 신인왕이었지만 올해 2년차 징크스를 혹독하게 겪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최만희 감독이 꾸준하게 기용했던 - 어찌보면 팀의 간판이라고도 볼 수 있을 - 양현정 선수마저도 남대식 감독 취임 후 단 두경기(모두 교체)밖에 뛰지 못한 것이다.(최근 일곱경기째는 아예 출전도 못하고 있다.) 반면 그전까지 거의 경기를 뛰지 못하던 추운기, 강금철, 안대현 선수 등이 주전으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물론 비에이라나 아리넬슨 같은 주전급 외국인 선수들이 새로 보강된 측면도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나머지 선수들이 감독이 바뀌면서 느닷없이 실력이 늘거나 줄지는 않았을 것이니, 어디까지나 신임 감독이 전임 감독과 선수를 보는 평가기준이 다르다는 얘기일 것이다.

부천도 마찬가지이다. 부천은 최윤겸 감독이 취임시 분명하게 '전임 조윤환 감독의 시스템을 그대로 따르겠다'라고 공언했음에도 불구하고, 선수 구성에 적지 않은 변화가 생겼다. 우선 수비진의 김한윤, 최정민 선수와 공격진의 이성재 선수가 빠진 대신, 그동안 거의 뛸 기회가 없었던 샤리나 이상윤 선수가 새롭게 가세해서 발군의 활약을 보이고 있다. 특히 이상윤 선수나 샤리선수같은 경우에는 조윤환 전 감독 아래에서는 거의 쓸데가 없는 용도폐기 수준으로까지 내려갔던 선수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최윤겸 '체제' 아래에서 제몫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국가대표팀에서도 더 심하다. 언뜻 생각해 보면 한 나라에서 가장 축구 잘하는 선수들을 모아 놓은 것이 국가대푠데, 그렇게 많이 바뀌겠느냐라고 생각하겠지만, 차범근 감독에서 허정무 감독으로 , 허정무 감독에서 다시 히딩크 감독으로 지휘봉이 넘어갈 때마다 대표팀은 많은 변화를 겪게 된다. 누구때는 황태자 소리를 듣다가 졸지에 찬밥이 되어버리고, 아무도 신경쓰지 않다가 자고 일어나니 신데렐라가 되어 버리는 경우는 이제는 더이상 특이한 일이 아니다. 이영표, 박진섭, 고종수, 최용수, 김병지 등등... 예를 들면 끝이 없을 정도로 말이다.

그럼 생각하는 관점을 바꿔서 한번 선수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선수의 입장에서는 두가지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첫번째는 감독을 잘 만나서 - 자신의 축구스타일과 맞는 감독을 만나게 되어 - 화려한 각광을 받으며 주전으로 도약하고 탄탄대로를 걸어가는 케이스와, 자신의 축구스타일과 전혀 틀린 감독을 만나게 되어서 자신의 실력의 반도 발휘하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하다가 축구화의 끈을 풀르게 되는 케이스 말이다. 첫번째 케이스야 좋은 일이긴 하지만 두번째 케이스에 해당되는 선수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겠는가? 선수 개인의 입장이 아니라 축구계 전체로 봐서도 손해가 아닐 수 없다.

사실 예전까지의 축구계의 구조하에서는 이런 케이스가 많이 나올수밖에 없었다. 진학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원하는 학교가 아닌 친구들을 데려갈 수 있는 학교를 선택해야 하고, 프로에 온다 해도 나눠먹기식의 드래프트제도 하에서 자신이 구단을 선택할 수 없었으며, 일단 프로에 오면 축구인생이 끝날때까지 해당 구단에 묶여 쉽게 팀을 옮길 수 없게 되어 왔던 것이 현실이다. 구단에 입장에서도 드래프트를 통해서 선수를 선발하다 보니 자기 팀의 스타일과 맞지 않아도 다른 팀에 가게 되면 자기 팀에 손해가 오고, 또 안뽑자니 아깝고 해서 선수를 뽑았다가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감독은 자기 입맛에 맞지 않는 선수를 뽑을 수 없고, 구단 역시 제대로 뛰지도 못할 선수에게 비싼 돈을 들이게 되는 것이니 서로가 손해를 보게 되고 피해자가 되어 버리고 마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이제 프로에서 자유선수선발제와 FA제도를 시행하게 되고, 클럽시스템이 활성화되어 더이상 축구가 진학의 수단이 되지 않게 된다면, 선수는 자신의 기량을 100% 발휘할 수 있는 구단을 선택하고, 구단 역시 100% 활용할 수 있는 선수를 선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게 될 것이다. 구단은 자신의 팀에 가장 필요한 선수를 자유롭게 뽑을 수 있게 되고, 선수 역시 "제 축구스타일이 맞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 팀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라면 제 실력의 100%를 발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라며 인터뷰를 할 수도 있다. 만일 진짜로 이런 때가 오게 된다면 당연히 한국 축구 역시 하나의 커다란 구조적 결함을 없애버리고 한단계 발전할 수 있는 계기로 삼을 수도 있지 않은가 말이다.

자료제공: 후추닷컴

http://www.hooc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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