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농구가 전성기를 구가했던 94년과 95년. 대학의 양웅 고려대와 연세대의 숙소엔 매일 2천∼3천통의 팬레터가 쌓였다. 당시 ‘오빠부대’의 우상인 연세대의 우지원 김훈, 고려대의 전희철 김병철은 매일 4백∼5백통의 팬레터를 놓고 머리를 싸맸을 정도.
그러나 지금 이는 옛 추억일 뿐. 연세대 농구팀 숙소에선 요즘 팬레터를 보기 힘들다. 한주일 내내 기다려봤자 겨우 10∼20통. 최고의 스타라는 서장훈이 “한달에 두세통”이라고 푸념할 정도.
그렇다고 선수들의 기량이 전보다 처지는 것은 아니다. 연세대의 조상현 황성인은 94년 멤버인 우지원 김훈을 능가한다. 고려대의 현주엽도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스타. 그런데도 왜 팬레터가 안올까. 오빠부대를 자극할 동기가 사라졌다는 것이 농구인들의 분석. 프로농구 출범으로 ‘골리앗(실업팀)’을 통쾌하게 거꾸러뜨리는 ‘다윗(대학팀)’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된 것이 첫째. ‘다윗끼리의 싸움’은 더이상 볼거리가 안된다는 얘기다.
한때 산처럼 쌓였던 팬레터는 공해. 팀의 주무가 ‘알아서’ 처리하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귀하다 보니 선수마다 앞다퉈 읽는다.‘아, 옛날이여.’
〈최화경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