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총과 활[임용한의 전쟁史]〈71〉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8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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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의 패인에 대한 해석을 보면 그 시대상이 보인다. 1970년대까지는 초기 패전의 원인을 조총에 돌렸다. 어렸을 때 교실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은 기억도 난다. 조정에 보고가 올라왔단다. 왜군이 빨간 단풍나무 같은 것을 들고 있는데 겨누기만 하면 사람이 죽는다. 조총을 처음 본 조선군의 보고였다는 것이다. 지금 들어도 공포스럽다.

병사와 백성은 그랬을 수도 있는데, 조선 조정은 이미 조총에 대해 알고 있었다. 전술적 능력까지는 몰랐어도 말이다. 이런 해석은 산업화, 기술발달에 목매던 당시의 분위기, 근대 과학기술을 소홀히 했던 조선시대에 대한 반성 내지는 원망이 담겨 있다. 1980년대 말에는 난데없이 조선의 활이 조총보다 더 뛰어나다는 주장이 등장했다. 사거리, 발사속도, 관통력 모두 각궁이 강하다. 게다가 조총은 비가 오거나 바람이 심한 날엔 사용할 수 없지만, 활은 사용할 수 있다. 사실은 얼마 전에도 이 문제로 토론을 했는데 여기에 대한 반론을 지금 쓰지 않겠다. 다만 임진왜란을 직접 겪었던, 그리고 총과 활을 모두 사용해 보았던 16세기 이후의 조선 관료들은 조총을 선택했다는 말만 하겠다.

우리가 산업화에 성공하고 국가적인 자신감이 상승하자 전통을 사랑하는 마음이 전통을 미화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물론 1960∼70년대도 그런 사례는 있었지만 전통 기술이 근대 과학기술보다 우수하다고 주장할 정도로 자신감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그러면 임진왜란 초기의 패전은 무엇 때문인가? 여기서 갑자기 정부와 지배층, 양반들에 대한 비난이 솟구친다. 선조 이야기만 나오면 몸을 떨면서 갈아먹고 싶다고 극언을 하는 사람도 여럿 만났다. 그들을 변호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 비판이 개인의 무능, 소수의 인격적, 양심적 문제에 대한 분노로만 연결되어서는 역사의 교훈이 될 수 없다. 능력과 사회구조의 문제, 그것이 만들어낸 국민정서와 가치관, 그런 것들이 방치되니 해결책이 아니라 궤변과 마녀사냥, 책임전가가 합리를 이긴다. 실패의 원인을 분석하지 못하면 또 반복된다.
 
임용한 역사학자
#임진왜란#조총#산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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