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정훈의 호모부커스]추천사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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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훈 출판평론가
표정훈 출판평론가
 정가 표시와 바코드가 들어가는 책의 겉표지 뒷면을 출판계에서는 ‘표4’라 한다. 제목이 들어가는 겉표지 앞면은 표1, 앞면의 안쪽은 표2, 겉표지 뒷면 안쪽은 표3, 이렇게 표지의 면수를 순서대로 일컫는다. 추천사는 대부분 표4에 싣기 때문에 추천사를 ‘표4’라고 할 때도 있다. “표4를 써 주십사” 했다가 추천사를 부탁받는 사람이 못 알아듣는 경우도 없지 않다. 추천사 섭외 최우선 순위는 저자와 친분 있는 저명한 전문가다.

 별도로 추천사를 받지 않고 저명한 인물이 작품이나 작가를 이미 평한 말을 추천사로 활용하기도 한다. 고전적인 명작의 경우다. “이것 말고는 아무 작품을 쓰지 않았다 해도 톨스토이를 위대한 작가로 인정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예술성이 높다.” 톨스토이의 ‘부활’에 관해 아나키즘 사상가 크로폿킨이 한 말이다.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는 시인 릴케를 상찬했다. “독일에서 시인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릴케를 떠올린다.”

 질문형으로 추천의 강도를 높이기도 한다. 작가 밀란 쿤데라는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소설 ‘백년의 고독’을 이렇게 말했다. “책꽂이에 ‘백년의 고독’을 꽂아 놓고 어떻게 소설의 죽음을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나라 작가 김연수는 살만 루슈디의 소설 ‘한밤의 아이들’을 이렇게 추천했다. “이 놀랍고 터무니없고 귀청이 터질 만큼 수다스러운 이야기꾼에게 어떻게 매료되지 않을 수 있을까?”

 책을 읽지 않고서도 쉽게 쓸 수 있는 추천사도 있다. 정치인이 선거를 염두에 두고 내는 책에서 추천사는 곧 축사이자 격려사다. 저자만 한껏 치켜세우면 되므로 쓰기가 쉽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조지 슐츠, 새뮤얼 헌팅턴, 조지프 나이, 리처드 홀브룩,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헨리 키신저. 이들은 서로의 책을 추천해 준 관계로도 얽혀 있다. 이러한 추천사 네트워크는 미국의 정·관계와 학계, 언론계 인맥 지도이기도 하다.

 책의 진가를 알아보는 추천자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사마천은 ‘사기(史記)’를 편찬한 뒤 몰이해와 오해를 걱정한 나머지, 책을 “명산에 감춰두고 부본(副本)을 수도에 두어 후대의 성인, 군자들이 열람하길 기다린다”고 하였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을 완성하고 피렌체의 실권자 로렌초 데메디치가 자기를 등용하길 바라며 헌정사를 썼으니, 스스로 책과 자기 자신을 추천한 것이다. 요란한 빈 수레 추천사 열 마디보다 진실한 자기 추천 한마디가 더 나아 보일 때도 있다.
 
표정훈 출판평론가
#정가표시#백년의 고독#추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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