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용의 다른 경제]대통령은 ‘양적완화’를 몰랐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11일 03시 00분


코멘트
홍수용 논설위원
홍수용 논설위원
‘망나니 동생 돕기’라는 이 드라마의 등장인물은 어머니, 빚 많은 큰아들, 큰아들의 돈 많은 아내, 돈을 흥청망청 쓰는 망나니 동생 등 4명이다.

망나니 동생을 돕는 방법은 ①동생이 갖고 있는 물건 사주기 ②동생 집을 담보로 현금 빌려주기 ③동생 사업에 직접 투자하기 등 3가지다. 큰아들은 자신의 빚이 이미 많으므로 아내에게 동생을 도와주라고 하지만 핏줄도 아닌 도련님을 선뜻 도울 형수는 없다. 아내는 ②번 대출 방식으로 주로 돕되 ③번 투자 방식은 추후 논의하자고 했고 큰아들도 동의했다. 수년 전 그렇게 동생을 도운 적이 있어서 부담이 작았다. 갑자기 어머니가 ①번 방식을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라고 나서 줄거리가 완전히 꼬였다.

양적완화, 검토대상 아니었다

총선 전 새누리당 강봉균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이 제안한 ‘한국판 양적완화’가 막장으로 치닫고 있다. 이 드라마에서 어머니는 박근혜 대통령, 큰아들은 정부, 아내는 한국은행, 동생은 산업은행을 빗댄 역이다.

①번은 한은이 산업금융채권(산금채)을 사주고 산은은 이 돈을 기업 구조조정에 쓰는 방식이다. 3가지 방안 중 돈을 푸는 의미의 양적완화는 이것뿐이다. 하지만 굳이 한은이 아니라도 산금채를 사려는 수요가 많고, 산금채 발행이 늘수록 산은 부채 비율이 늘어나는 점에서 이 카드는 부정적이다.

기업 구조조정이 급한 지금 어울리는 정책은 산은의 자본을 늘려주는 효과가 나는 ②번 대출과 ③번 출자 (재정투입) 등 방식이다. 산은이 기업 부실을 털기 위해 돈을 써도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유지할 수 있다.

고위 당국자들이 익명을 전제로 털어놓은 발언을 들어보면 정부와 한은은 이미 양적완화 카드를 배제했고 자본 확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기준금리가 1.5%인 상태에서 하는 양적완화는 부실기업을 살리는 산업 정책이다”(4월 초, 한은 금통위원), “구조조정 재원은 결국 현행법 내에서 마련해야 할 것이다”(4월 말, 기획재정부 당국자), “한국판 양적완화는 부적절하기 때문에 부처에서는 이 표현 자체를 쓰지 않고 있다”(5월 초, 금융위원회 고위당국자), “산은의 대주주인 정부 대신 한은이 손실을 감수하며 자금을 댈 수 없다. 대출을 통한 자본 확충이 최적의 방안이다.”(5월 초, 한은 임원)

한 달 이상 불필요한 논란으로 구조조정의 골든타임을 낭비한 현실이 개탄스럽다. 그런데도 정부는 국책은행에 대한 구조조정용 실탄 충전 방식을 다음 달 말까지 정하겠다고 했다. 두 달이나 걸릴 문제가 아니다. 결론은 정해져 있다. ‘특수목적회사(SPC)인 자본확충펀드 설립→한은과 펀드를 연결할 은행 지정→한은이 은행에 대출→은행이 대출금을 펀드에 예치→펀드가 국책은행에 출자’의 단계다. 시간을 끄는 이유가 무엇인가.

실언에 발목잡힌 구조조정

박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편집·보도국장 간담회에서 “한국형 양적완화를 긍정적으로 검토해야 하고 그런 방향으로 추진되도록 힘쓰겠다”고 말했다. 양적완화는 검토 대상도 아닌데 대통령이 엉뚱한 말을 하는 바람에 구조조정의 발목이 잡혔다.

대통령에게 잘못된 정보를 입력한 청와대 비서진의 책임이 크지만 오류를 바로잡지 못하는 정부도 한심하다. 경제팀은 “자본 확충도 어찌 보면 양적완화 아니냐”라거나 “정부와 한은 사이에 이견이 없다”는 공허한 말로 논점을 흐리지 말라. 지금 필요한 것은 “한국판 양적완화는 정치적 이벤트였다. 이제 부실기업 정리라는 한 목표만 보고 뛰겠다”는 직언이다.
 
홍수용 논설위원 legman@donga.com
#양적완화#강봉균#구조조정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