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구의 옛글에 비추다]아름다운 고집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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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구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조경구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서울의 오천(梧泉) 이씨(李氏)는 대대로 부자였으나 증손, 현손 대에 이르러 가산을 다 탕진하고 알거지가 되자 그 집을 홍씨(洪氏)에게 팔았다. 집을 산 홍씨는 대청의 기둥 하나가 기울어져 무너지려는 것을 보고 수리를 하였다. 그런데 수리하다 보니 그 안에서 은(銀) 3000냥이 나왔다. 이씨의 선조가 숨겨둔 것이었다.

 집안이 망하여 마지막 재산이던 집마저 팔았는데 그 집에서 생각지도 못한 보물이 나왔습니다. 집을 산 사람은 비밀을 감추려 들고, 우연히 문 밖에서 이를 엿들은 원래 주인은 자기 것 빼앗자고 달려들 테니, 이제 곧 보물을 둘러싼 음모와 배신의 막장 드라마가 펼쳐질 판입니다. 조선 후기의 시인 추재(秋齋) 조수삼(趙秀三·1762∼1849) 선생께서 소개하는 ‘양금홍이(讓金洪李)’ 즉 ‘금을 사양한 홍씨와 이씨’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글의 제목이 우리의 예상을 한참 빗나갑니다. 어찌된 일인가요.

 홍씨가 이씨를 불러 은을 돌려주려 하였다. 그러자 이씨가 사양하며 말하였다. “은을 비록 우리 선조께서 숨겨두었을지라도 그것을 증명하는 문서가 없소이다. 게다가 집을 이미 당신에게 팔았으니 은 또한 당신 것이오.”

 이렇게 서로 은을 사양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이 소문이 관청에까지 전해지자 관청에서는 조정에 아뢰었다. 이를 들은 임금께서는 교서를 내려 칭찬하였다. ‘나의 백성 가운데 이토록 어진 자가 있다니, 누가 오늘날 사람이 옛사람만 못하다고 하겠는가(吾民有如此賢者, 誰謂今人不如古人乎)?’ 그러고는 그 은을 반씩 나눠 가지게 한 뒤 두 사람 모두에게 벼슬을 내렸다.

 한바탕의 활극을 기대했던 분들은 다소 실망하셨을까요. 그렇지만 자신의 원칙과 소신을 굳게 지킨 두 사람이 마침내 벼슬까지 얻게 되었으니 아름다운 결말입니다. 고집불통이라고 답답해하실 수도 있지만, 이런 고집은 통하는 세상이 되어도 좋겠습니다. 선생은 이 일에 대해 이렇게 시를 남기셨습니다.

 홍씨 집이 어찌 이씨 집에 전하는 돈에 관여하리오(洪家何管李金傳)/사양하는 사람도 가져가라는 사람만큼이나 어질구나(辭者賢如讓者賢)/태평성대에 상을 내려 경박한 풍속 두텁게 하니(聖世旌褒敦薄俗)/이웃 고을 여러 곳에서 밭 경계 다투는 일 그쳤다네((린,인)邦幾處息爭田).
 
조경구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오천 이씨#조수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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