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원의 옛글에 비추다]고양이의 배은망덕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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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가 곡식을 축내기에
고양이를 길러 그 해악을 없애려 했는데
이제 고양이의 해악이 또 이와 같구나

鼠善害苗 故畜而欲去其害 今猫之害 復如是夫
(서선해묘 고휵이욕거기해 금묘지해 부여시부)

― 이유원의 ‘가오고략(嘉梧藁略)’


옛날 어떤 스님이 고양이 기르기를 좋아했다. 아침저녁으로 밥을 먹여 길렀고, 고양이도 절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고양이가 절을 떠나 한참 만에 돌아왔고 이후 새끼 두 마리를 낳았다. 새끼가 조금 자라자 어미 고양이가 새끼를 끌고 지붕 위에 올라가더니 새끼들을 남겨둔 채 자신만 훌쩍 땅으로 뛰어내렸다.

새끼들은 어미를 부르짖으며 울었지만 어미 고양이는 계속 아래에서 새끼들을 불러대기만 했다. 이리저리 어쩔 줄 몰라 한참을 울어대던 새끼들은 어느 순간 아래로 몸을 던졌다. 이 일이 있은 뒤 새끼들은 담장을 타고 오르고, 나뭇가지를 뛰어 넘나드는 등 재주를 키워갔다.

이후 이 고양이들은 부처님에게 바치는 음식이든 스님들에게 공양하는 음식이든 훔쳐 먹지 않는 음식이 없었고, 동자승들이 후려치려 해도 어찌나 날쌘지 당해낼 수가 없었다. 이때 스님이 위의 말처럼 탄식하고는 더이상 고양이를 기르지 않았다고 한다.

요즘은 고양이를 애완용으로 기르지만 옛날에는 쥐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함이 고양이를 키우는 가장 큰 목적이었다. 그런데 곡식을 갉아먹는 쥐들보다 더 큰 해악을 끼친다면 이를 어디에 쓰겠는가. 스님이 주는 밥을 먹고 자라면서 재주를 길러 오히려 스님에게 해를 끼쳤으니, 참으로 배은망덕한 경우이다. 허나 고양이의 천성이 원래 그러한 것인데 이를 모르고 길렀다면 누구를 탓하기도 참으로 어려운 노릇이다.

역사에서도 작은 근심을 해결하려고 내놓은 해결책이 결국에는 더욱 큰 근심덩어리가 되어버리는 장면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문제가 생겼을 때에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진정한 해법은 무엇이며, 새로운 폐해를 일으키지 않을 해결사는 과연 누구인지 혜안을 가지고 살펴봐야 할 것이다.

이유원(李裕元·1814∼1888)의 본관은 경주이고 호는 귤산(橘山)이다.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흥선대원군과 대립하기도 했고 벼슬은 영의정에 이르렀다. 학문도 뛰어나 ‘임하필기(林下筆記)’라는 저술을 남겼다.

이정원 한국고전번역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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