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진호 어문기자의 말글 나들이]진달래와 철쭉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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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호 어문기자
손진호 어문기자
산과 들이 불이라도 난 듯 붉게 물드는 봄이다. 이 계절을 봄답게 만드는 주역 중 하나는 역시 너른 야산에 흐드러지게 피는 진달래와 철쭉이다.

그런데 둘의 처지는 천양지차다. 같은 진달랫과인데도 진달래는 참꽃으로, 철쭉은 개꽃으로 불린다. 왜일까. 먹을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 때문이다. 진달래는 칡, 쑥처럼 춘궁기(春窮期)나 흉년에 밥 대신 배를 채울 수 있는 구황식물(救荒植物)이다. 반면 철쭉은 독성이 있어 먹을 수 없다. 철쭉은 억울하겠으나 목구멍이 포도청인 시절에 붙은 이름이니 누굴 탓하랴.

참꽃의 ‘참-’은 ‘진짜’와 ‘썩 좋다’는 뜻을 가진 접두사다. 참꽃, 즉 진달래는 ‘진짜 달래’라는 뜻이다. ‘개-’는 진짜나 좋은 것이 아니라는, 보잘것없다는 뜻을 담고 있다. 개꿈 개살구 개나리 같은 낱말들을 봐도 알 수 있다.

개나리? 개나리의 ‘개-’가 별 볼 일 없다는 뜻이라면 고개를 갸웃할 독자들이 많을 줄 안다. 그러나 앞에 예를 든 ‘개나리’는 봄의 대표적 전령사이자, ‘나리 나리 개나리 입에 따다 물고요’(봄나들이·윤석중 작사 권태호 작곡)에 나오는 물푸레나뭇과의 그 개나리가 아니다. 야생하는 나리의 총칭인 ‘개-나리’를 말한 것이다.

진달래 하면, 김소월 시인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애절한 사랑과 이별, 그리고 한(恨)을 호소력 있게 표현한 그의 시 ‘진달래꽃’은 국민시나 마찬가지다. 가수 마야가 2003년 노래로 불러 히트하기도 했다. 이 시의 한 대목, “가시는 걸음 걸음/놓인 그 꽃을/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에 나타나는 ‘즈려밟다’는 표준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아시는지. ‘위에서 내리눌러 밟다’라는 의미의 바른말은 ‘지르밟다’이다. 이때의 ‘지르-’는 ‘내리누르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신이나 버선 따위를 뒤축을 눌러 신는 게 ‘지르신다’이고, 아랫니와 윗니를 꽉 눌러 무는 게 ‘지르물다’이다.

철쭉에는 산철쭉 왜철쭉 황철쭉 등이 있다. 이 중 왜철쭉을 많은 사람들이 ‘연산홍’이라고 부르는데 바른말은 ‘영산홍(映山紅)’이다. 말 그대로 ‘산을 붉게 비치게 한다’는 뜻이다.

이번 주말, 잊고 살던 산에 올라 봄꽃 향기에 흠뻑 취해봄은 어떨지. 아, 참꽃 한입 베어 물며 조상들이 겪었던 고생을 잠시 느껴보는 것도 잊지 마시고.

손진호 어문기자 songbak@donga.com
#진달래#철쭉#개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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