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조성하]관광의 ‘갑오개혁’… 나를 위한 힐링 여행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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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하 여행전문기자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새해 첫 아침은 누구나 새로운 다짐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그 결의를 더 극적으로 각인시키기 위해 동해 바다로, 태백산으로 해맞이까지 떠난다. 작심삼일에 그치지 않으려는 노력이다. 그런데 그런 새해의 시작을 바라보는 시점이 동서양에선 극단적으로 다르다. 그간 참 많은 곳을 돌아다녔지만 ‘원단(元旦·설날 아침)’의 개념을 서양에선 아직 본 적이 없다. 그대신 그들에겐 ‘카운트다운(Countdown)’이란 게 있다. 아침 해가 솟아야 비로소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된다고 믿는 우리와 달리 서양에선 시계의 시침과 분침, 초침이 자정을 가리키는 12에 모여야 새해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렇듯 판이한 동서양의 차이. 그게 게서 그치지 않음은 물론이다. 휴양리조트의 입지도 그렇다. 서양의 해변 리조트―서양인 손님을 겨냥한 태국 인도네시아의 리조트도 마찬가지로―는 예외 없이 해 지는 서쪽에 자리 잡는다. 반면 한국 등 동양에선 정반대다. 대개 해 뜨는 동쪽에 있다. 이유는 자명하다. 서양에선 해 질 녘 선다운(해넘이)과 노을이 지상최고의 이벤트로 칭송받아서다. 그래서 해 질 녘이면 해변에 나와 해넘이를 바라보며 와인을 홀짝인다. 반면 동양인은 해돋이(해맞이)에 더 큰 가치를 둔다. 수평선이나 산등성 위로 불끈 치솟는 아침 해의 찬란함과 대지를 암흑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은근한 여명까지 즐긴다. 시작에 의미를 두는 동양에 반해 서양인들은 마무리에 더 관심을 두는 듯하다.

그런데 유독 휴식에서만큼은 동양이 이런 독자성을 상실한 채 서양을 답습한 듯싶다. ‘관광(觀光)’이라는 말이 그렇다. 이게 서양에선 ‘사이트시잉(Sightseeing)’인데 동양에서도 역시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단순한 볼거리 찾기에 그친다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 선조―조선시대―가 관광이란 단어를 조어(造語)할 때 거기 담은 의미는 전혀 다르다. ‘빛나는 업적을 쌓은 이를 찾아가 그걸 살피고 배우는 것’이다. 관(觀)은 ‘꿰뚫을 만큼 세밀하게 들여다봄’이지 피상만 보는 ‘시(視)’가 아니다.

서양에서 관광은 산업혁명기인 1845년 영국의 토머스 쿡―현재도 영업 중인 영국의 대표적인 여행사―이란 전도사가 전세 낸 증기기관차로 저렴한 패키지를 구성해 일요일을 맞아 쉬고 있던 도시 근로자를 먼 도시의 금연모임에 데려간 게 시초다. 그 단체관광이 지구촌에선 아직도 대세다. 그럼에도 여기 숨겨진 ‘불편한 진실’을 아는 이는 아직 없다. 관광이 ‘인간’이 아니라 ‘일’(work)을 위한 것이라는….

관광이 ‘남는 시간(Leisure)에 즐기는 재창조(Recreation) 활동’임에 동의한다면 옥스퍼드 사전의 단어 풀이를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왜냐면 그 함의(含意)가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어서다. 그 풀이를 보면 레저는 ‘일하지 않거나 근무하지 않음으로써 얻어진 자유시간’(time when one is not working or occupied. free time), 재창조는 ‘그런 자유시간에 즐기기 위해 벌이는 활동’(activity done for enjoyment when one is not working)이다.

이 두 단어엔 공통된 전제가 있다. ‘일’이다. ‘남는 시간’이란 일과 일 사이의 일하지 않는 시간, ‘재창조’는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과업 수행을 위해 남는 시간에 즐기는 활동이다. 다시 말해 남는 시간과 재창조가 나의 인간적 삶이나 그걸 위한 휴식 활동이 아니라 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개념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구태의 관광은 청산돼야 한다. 그리고 그런 자각을 위해 새해 새 아침은 더없이 좋은 시점이다.

일을 위한 도구로서의, 생산지향적 수단으로서의 관광은 이제 버리자. 이젠 스스로 자아를 돌보고 실현하며, 내 삶의 가치를 고양시키는 인간 본성의 회복 수단으로서의 관광을 지향하자. 더불어 선인의 빛나는 모습을 찾아보는 진정한 관광으로 돌아가자. 요즘 세상의 화두는 힐링(Healing)이다. 힐링은 ‘자신을 스스로 귀하게 대접해 본성을 회복시키는 치유(治癒)’다. 그러니 이젠 관광과 여행도 힐링이란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추구해야 한다. 120년 전 갑오개혁은 평가가 분분하나 이 새로운 자아 회복의 시도만큼은 이 갑오년에 성공하길 기대한다.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해맞이#새해#힐링#여행#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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