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영의 따뜻한 동행]하늘과 땅 사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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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하늘이다, 오버!”

지금쯤 러시아 상공을 날고 있어야 할 남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오전 10시에 서울공항에 내려 주었는데 시간을 보니 오후 2시다. 깜짝 놀라서 ‘어디냐’고 물으니 하늘이라는 것이다. 그날이 마침 우리의 결혼기념일이었다. 남편은 오후 2시, 우리의 결혼식 시간에 딱 맞춰서 전화를 했다고 생색내면서 “남편을 하늘같이 모시라”는 주문을 잊지 않았다.

21년 전의 일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비행기에서 전화를 할 수 있다는 건 상상도 하지 못하던 시절이라서 뭐가 뭔지 어리둥절했지만 일단 기습적인 남편의 엉뚱한 주문에 대처해야 했다.

“알았어. 땅에 내려올 때까지는 하늘같이 모셔 주지.”

호기심 많은 남편은 이리저리 기내를 둘러보다가 위성전화를 발견했던 모양이다. 사무장으로부터 지상과 통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는 결혼식 시간에 맞춰서 통화를 부탁했다고 한다. 사무장은 특별한 날이므로 친절하게 전화를 연결해 주었고, 나는 문자 그대로 하늘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게 된 것이다.

우리 부부는 그날 전화를 연결해 준 사무장과 지금까지 특별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올 1월 31일 그 사무장이 30년 근무해 온 대한항공에서 정년퇴임하는 날에 우리 부부는 마지막 비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그를 맞이하기 위해 꽃다발을 들고 인천공항으로 달려가서 퇴임식에 참석했다.

“바다에서 제대한 후 하늘에서 퇴임하고 오늘 비로소 땅에 안착했습니다. 땅에서도 잘해 나갈 수 있도록 격려 부탁합니다.”

해군으로 군대 생활을 했고, 대한항공 사무장으로 정년퇴임한 후 새 학기부터 연성대 교수로 근무하게 되었으니 그의 말대로 육해공을 모두 섭렵하는 셈이다. 평소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고 인연을 소중히 여겨서 그런지 그날 해군 동기들과 동료 승무원들이 대거 참석하여 그의 새로운 출발을 축하해 주었다.

공항에서 돌아오면서 바다에서든 하늘에서든 땅에서든 맡은 일에 성실하고 열심히 사는 그런 분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진정한 주인공이 아닐까 생각했다. 돈과 권력을 갖고도 그것에 갇혀서 사는 사람들은 참다운 삶에 있어서는 갑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비행기도 이륙하면 언젠가는 착륙해야 한다. 잠시 하늘을 날고 있다고 해서 착각하지 말자. 머지않아 결국 땅으로 내려오게 되어 있으니 말이다. 하늘과 땅 사이에 영원한 것은 없다.

윤세영 수필가
#위성전화#대한항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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