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영의 따뜻한 동행]세상은 넓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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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남편에게 건네는 나의 첫마디는 늘 똑같다. “지금 몇 시야?” 벽에 걸린 시곗바늘이 또렷하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아쉽다. 안경 없이 맨눈으로 세상과 초점을 맞출 수 있다면 얼마나 명쾌할까! 남편은 그 나이에 아직 시계 볼 줄도 모르냐고 뻐기면서 시간을 알려준다. 그 농담 끝에 아는 것과 보이는 것의 상관관계를 생각한다. 시계 보는 법을 알아도 시계가 보이지 않으니 소용이 없다.

한 친구가 지금은 예순이 넘은 큰누나가 초등학교 선생이 되어 산골 학교로 처음 부임했던 이야기를 했다. 내 친구는 그때 고등학생이었다고 한다. 누나 학교로 찾아가 보니 누나가 빈 교실에서 풍금을 치고 있더란다. 산 그림자가 고즈넉한 시골학교 교실에서 풍금을 치고 있는 누나의 뒷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순간 가슴이 먹먹했다고 한다.

그런데 연애 한 번 해본 적이 없는 예쁘고 순진한 누나가 나중에 집으로 데리고 온 결혼상대는 나이 차가 많이 나는 같은 학교 노총각 선생님이었다. 당시 누나에게는 작은 시골학교가 세상의 전부였던 것이다. 더구나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한 누나는 남편의 병수발만 하다가 젊은 나이에 사별하는 슬픔을 겪었다.

지금은 대학 교수가 된 나의 친구는 학생들에게 항상 세상을 넓게 바라보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고 말했다. 세상이 넓어서 얼마든지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고 혹시 실패한 선택을 한 경우에도 얼마든지 다른 선택의 기회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서다. 혼자가 된 누나가 두 번째 선택을 두려워하고 혼자 지내는 것이 못내 답답하고 가슴 아프다는 친구의 말이다.

그러자 한 친구가 말했다. 주변에 선천적으로 시야가 좁게 보이던 사람이 수술을 받고 정상인처럼 볼 수 있게 되었다며 기뻐하기에 “그동안 굉장히 답답했을 텐데 왜 이제야 수술을 받았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랬더니 그 사람은 모든 사람이 그렇게 보이는 줄 알았다고 대답하더라는 것. 처음엔 싱거운 사람이라며 웃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수긍이 갔다. 태어나서부터 그렇게 보였다면 그게 당연한 줄 알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혹시 정상인 줄 알고 있는 우리의 시각도 정상이 아닐 수 있지 않을까?

시력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시각이다. 시야를 얼마나 넓게 가지냐에 따라 세상을 훨씬 더 넓고 넉넉하게 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윤세영 수필가
#세상#선택#기회#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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